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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축구경기^^

홍승표 2024. 9. 30. 10:48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오곡백과 풍성하니 사람들의 얼굴에 넉넉한 미소가 짙푸른 하늘만큼이나 싱그럽지요. 어느 해 추석, 고향의 학교 운동장에서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동네축구시합이 벌어진 것인데 고향마을의 홍 씨, 조 씨 성을 가진 집안 축구경기였지요. 사촌동생이 조 씨 집안 처자(處子)와 결혼했습니다. 양 집안 모두 식솔이 수십 명에 달하는 번성한 집안이었지요. 사돈되는 분이 십 년 넘게 동네이장 일을 보고 있었는데 양가 식구끼리 축구경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가족들이 모였으니 얼굴도 익히고 친목을 도모하자는 뜻이었지요.

경기가 시작되기 전엔 승부에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양상이 달라졌지요. 중학생부터 쉰 넘은 어른까지 다양한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뛰기 시작한 겁니다. 가문의 명예가 걸렸다는 생각을 한 건지 승부에 집착하기 시작한 거지요. 경기가 과열되면서 거친 태클로 넘어지는 선수가 생기자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장 밖에서도 양 집안의 가족들이 승리를 위해 박수를 치며 목 터져라 응원하는 열기가 참 대단했지요. 축구경기를 구경나온 동네사람들도 세상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며 응원했습니다.

 

"너무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천천히 합시다. 막걸리 한 잔씩 하면서 쉬세요."

전반전이 끝났을 때, 큰 아버지가 과열된 경기분위기를 가라앉히려고 한 말씀 던지셨지요. 어른들이 술잔을 주고받더니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합석했고 동네잔치가 열린 듯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요란했지요. 15분 휴식시간은 3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그야말로 선수와 응원단 모두가 배꼽 잡는 장면이 속출했지요. 휴식시간에 마신 술이 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니 헛발질을 하거나 넘어지는 선수가 늘어난 것이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장이 환호성과 웃음바다로 바뀌었습니다.

축구경기는 무승부로 끝이 났지요. 경기가 끝나갈 무렵, 심판이 한 골 뒤진 팀에게 PK를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승자가 된 경기였지요. 어깨동무를 하고 운동장을 나온 선수들과 가족, 동네 사람들이 모여 뒤풀이를 했습니다. 양가는 물론 동네 사람들이 가지고 나온 다양한 음식들로 더없이 풍요롭고 흥겨운 시간이 이어졌지요.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사람들도 서로 인사를 나누며 함께 즐기는 동네잔치 그 자체였습니다. 양 집안의 축구경기가 올림픽 경기보다 재미있다는 말까지 나왔지요. 축구경기는 정규대회처럼 매년 이어졌고 늘 웃음소리가 드높았습니다.


지난 봄, 그 축구경기를 즐기던 큰 어머니가 돌아가셨지요. 양 집안 가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단연 옛날, 공 차던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요. 그 축구경기가 끊어진 지도 한참 되었습니다. 옛날과 달리 아이들이 많지 않아 축구팀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공 차던 사람 중엔 세상을 떠난 분도 많습니다. 이제 양 집안의 축구경기는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지만 함성소리 가물가물한 추억일 뿐이지요. 추석명절이 옛날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가진 건 넉넉지 않았지만 그 시절이 그리운 이유이지요. 현명하게 살아오신 어른들의 지혜가 돋보였던 옛날입니다.

 

새삼 인심 넉넉하고 사람냄새나던 그때, 모두가 함께 어울리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