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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새로워지기를...

홍승표 2025. 2. 2. 21:52

새로운 설 명절을 앞둔 어느 토요일 날, 몇몇이 순대 국밥집에 모였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모임이자 또 다른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였지요. 멤버 중에는 속칭 글쟁이가 다섯이나 됩니다. 그 중 한 글쟁이가 지난해 회갑이었지요.

오랫동안 기자로 살아온 중견 언론인입니다. 법조 출입도 오래 했고 편집국장을 거쳐 언론사의 얼굴인 주필로 일해 온 친구이지요. 그의 글은 간결하면서도 직설적이고 무게감이 있습니다. 때론 엄중하게 꾸짖지만 낭만적인 글로 메마른 가슴을 적셔줄 때도 있지요.


"올해 정년인데 퇴직 후가 걱정입니다." "회사에서 붙잡을 거야!"

연말 모임 때, 그가 정년을 앞둔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때 제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술잔을 건네며 위로의 한마디를 던졌었지요. 그런데 ‘잠꼬대가 현실이 된다’는 말처럼 그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일을 더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다른 한 친구도 마흔 중반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으니 대박이 난 거지요. 좋은 일이 겹쳤으니 넉넉했습니다. "아는 사람 잘되는 게 좋다"는 말이 실감 나게 술맛도 달콤했지요.

지난해는 버겁고 힘겨운 한 해였습니다. 정성을 다해 살았지만 부족한 게 많았고 왜곡되고 폄훼되어 가슴 친 순간도 있었지요. 사는 게 힘들다는 걸 절감하며 어둠 한구석에서 눈물 감추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겹겹이 쌓여 제 마음을 더 농익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생각이지요.

삶의 기쁨이나 슬픔 모두가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눈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햇살 가득한 날이 있지만 비바람 눈보라 치고 천둥 벼락 치는 날도 있지요. 사는 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그 다양한 삶의 흔적이 쌓여 경륜이 되는 거지요. 그렇게 인생이 익어가는 겁니다.


가끔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물음표를 던져볼 때가 있지요. 삶의 근량(斤兩)을 저울질해 보는 겁니다. 세월 한 자락이 눈 흘기는 뒷전으로 가슴 한구석이 저려올 때도 있지요. 아직도 빈손이고 설익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루는 길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한해는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지요.

그렇다고 이런 허허한 순간이 아주 무의미한 건 아닙니다. 삶이라는 게 헛헛함 없이 비워지고 채워지는 건 아니지요. 내 마음대로 모두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순 후반이면 나이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든다는 말이 있지요. 살아갈 날이 줄어든다는 뜻이니 내려놓고 겸손하게 베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설익은 사람과 말없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돕는 삶을 사는 분이 있지요. 사람은 겉보다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힘든 법이지요. 한해를 더 살았는데 좋아진 게 없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마음 깊이나 넓이가 더 커졌어야하는데 별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래도 가진 건 없지만 추하지 않았고 처지거나 과하지 않고 혼자보다 함께 하려 애썼습니다. 거울을 바라보니 설익은 얼굴이 안쓰럽게 보였지요. 눈꼬리에 매달린 잔잔한 주름이 애처롭게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국가애도기간에 새해를 시작했지요. 상상 못 한 일이 겹쳐 일어난 건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지요. 항공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영령을 모신 합동분향소와 국립 현충원을 찾아 참배했습니다. ‘나날이 새로워지고 다달이 번성한다(日新月盛)’는 말이 있지요.

올해는 지난해보다 살아가는 게 더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죽으라는 법 없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말이 있지요. 다시 또, 나날이 새로워지고 새움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는 새로운 봄날이 찾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