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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 한가운데서

홍승표 2007. 10. 17. 10:36

 

            가을 그 한가운데서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붉게 물드는 산자락으로 낮에도 별이 내리는 눈빛 환한 이 가을, 한가위 하늘빛은 눈이 시리도록 짙푸르고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판으로   수많은 고추잠자리들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있는 지금은 더없이 풍요로운 계절 가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가을에는 가진 것 없어도 마음은 풍요롭게만 느껴지는 것 또한 가을이 가져다주는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때문일까, 실학의 대가인 다산선생께서는 일찍이 //철은 가을인데 쌀은 도리어 귀하고/가난한 집이라도 꽃은 더욱 많다네./가을빛 속에 꽃이 피어/ 다정한 사람들 서로 찾았지//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 가을은 분명 마음까지 풍요로운 계절임에 틀림이 없다.

 

유년시절, 가을걷이가 끝나면 그냥 富者가 된 것 같은 들뜬 마음으로 아이들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하루해를 넘기곤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떡을 빚어 동네사람들과 나눠먹고 어른들은 새벽이 되도록 덕담을 나누던 기억이 새롭다. 그것은 많고 적음을 떠나 지난봄에 씨 뿌리고 여름철 비지땀을 흘리며 가꾼 땀의 결실을 함께 나누며 서로 격려하고 다독이며 더불어 함께 살아 보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풍년이 든 해에는 풍악을 울리며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신명나게 춤을   추고 돼지를 잡아 한마당 큰잔치를 벌이곤 했다. 5일마다 열리는 장터에서는 씨름판도 벌어졌다. 장사로 선발된  씨름꾼에게 주는 송아지는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씨름판 한 모퉁이에서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서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눈 맞은 처녀 총각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가진나 못가진자나 마음만은 더없이 넉넉하기만 한 계절이  가을이 아닐까한다. 그런데 도시로 떠나온 이후에는 이러한 여유와 넉넉한 인심을 맛 볼 수 가 없었다. 가진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못 가진 사람들은  버거운 삶에 찌들어 가을을 가을답게 느껴보지도 못하고 지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가 없다. 엊그제는  애완견이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이웃집 父子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람이 구속됐다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가 없다.

 

마음의 여유가 없고  넉넉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동네에서는 일부 아파트 주민들이   인근 초,중학교 학생들이 등,하교시간에 소란을 피운다며 경찰에 단속을 해달라고 신고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세상에 자식 없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내 자식이 귀하면 다른 자식도 귀한법인데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다니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가 없었다. 만약에 그들은 자식들이 학교에 갈 땐 반창고로  입을 봉해서 보낼 것인지 되묻고 싶은 대목이다.

 

가진 것은 분명 예전보다 많은데 마음은 오히려 각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지 한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아무리 강조하고 실천해도 지나  치지 않을 덕목이 아닐까한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넉넉하게 익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가을이 풍요로운 계절이라고 해서 저절로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가을빛에 물들고 스스로 높고 푸르른 하늘처럼 마음을 정갈하게  다듬어야만 한다.  가을을 가을답게 살아가는 일은 가을에 걸맞게 살아가는 몸짓일 것이다. 어둠은 빛으로 풀고 미움은 사랑으로 풀어야 한다. 삶은 비록 힘겨워도 가슴에는 넉넉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더없이 싱그럽고 풍요로운  가을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