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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그 이후

홍승표 2007. 11. 29. 11:45
 

                   주례 그 이후

                             홍 승표

사람이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상황에 휩쓸려 따라가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물론 본인 의사가 내재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르긴 하지만 그 굴레를 벗기 어려운 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말 주례를 맡았던 필자의 처지가 바로 그렇습니다. 물론 첫 번째 주례였지요. 함께 일했던 후배 직원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안계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청에서 일하게 된 그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은 3년여 되었지요. 마침 필자가 일하는 부서에 발령을 받아 동료 직원으로 함께 일하게 된 것입니다. 고교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큰 키에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는 보기 좋은 젊은이였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항상 웃음 짓는 얼굴에 운동선수답지 않게 수줍었지만 모든 일에 적극적이어서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요즈음 보기 드문 건실한  청년이라는 평가와 칭찬을 한 몸에 받고 있었지요. 그런데 막상 결혼식을 앞두고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고 합니다. 주례를 부탁드릴 분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지요. 결국 다른 친구를 통해 필자에게까지 부탁이 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정말 망설였습니다. 나이도 젊었지만 과연 새롭게 출발하는 한 쌍의 신혼부부에게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해왔는지 스스로에게 자문을 해보게 된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주례를 맡기로 했습니다. 신랑의 사람 됨됨이를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좋은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엔 긴장도 되고 부담도 되는 법입니다.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예식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랑신부에게는 양가부모님과 형제자매에게 잘하고 건강하게 서로의 기를 살려주면서 온갖 정성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삶의 보약이 되는 말도 들려주었습니다. 인생의 선배이기도 했지만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들려줄 수 있는 말이기도 했지요. 신랑신부와 사진을 찍고 나서야 비로소 주례역할은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긴장 속에 첫 번째 주례 경험은 필자에게 많은 것을 남긴 일대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주례를 서 줄만큼 잘 살아왔느냐 하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새롭게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그들에게 있어 과연 필자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졌을까 하는 것이지요. 또한 앞으로 그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랑신부가 주례사를 듣고 정말로 잘 살아야하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했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필자는 이 순간 그 어느 하나도 충족된 것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다만 한 가지 그들이 정말로 축복받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축원했다는 사실에 마음의 위안을 삼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주례 그거 함부로 응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적어도 주례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경륜과 덕망을 갖춘 연후에나 해야 할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 신출내기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래도 이번 주례가 후회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동료이자 후배의 입장에서도 예식장 전문 주례보다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또 다시 주례 부탁이 올 리도 없겠지요. 행여 들어온다 해도 당분간 주례는 정중히 사양할 생각입니다.주례를 맡기엔 필자 스스로가 너무도 부족한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주례 그거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은 일을 했다는 위안을 가져보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첫 주례를 계기로 도덕적으로나 사회적 윤리적으로나 정말 더 잘살아야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