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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을 다녀와서

홍승표 2007. 12. 4. 13:32
 

               금강산을 다녀와서

                                   홍 승표

개골산엘 다녀왔습니다. 겨울엔 금강산을 개골산이라 부른다고 하더군요. 8년 전 봄에 금강산엘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만 예전과는 이제 차원이 다른 수준 높은 관광지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때는 배로 公海上을 거쳐 장전항에 정박시키고 배에서 잠을 자며 관광을 했지요. 흔들리는 배안에서 흔들리는 마음으로 다소 불안한 관광을 했습니다. 잠자리도 그러하거니와 곳곳에 배치된 군인들의 모습이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안내원들도 말조차 건네기가 어려울 만큼 경직된 몸짓으로 서 있었습니다. 장전항 주택단지도 우중충한 것이 밤에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듯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더군요. 우선 호텔 만해도 금강산, 외금강, 해금강등 3개나 되고 부대시설도 훌륭했습니다. 온천도 있고 회집도 있으며 생맥주집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면세점도 있어 마치 외국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관광에 전혀 불편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룡폭포와 만물상등 이틀 동안의 관광은 여러 가지로 정말 좋았지요.

 

그런데 지금도 가슴 아린 기억이 남아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금강산 교예단 공연이 바로 그것입니다. 첫날 구룡연 일대를 돌아보고 온천을 즐긴 후 저녁에 금강산 교예단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높고 간드러진 목소리의 사회로 시작된 공연은 처음부터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지요. 바람을 가로지르는 빠르고 날쌘 몸짓과 때로는 우아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는 자태에 이르기까지 한 장면 한 장면이 정말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너무도 기가 막혀 그저 외마디 감탄사만 연발할 뿐 말문이 막힐 뿐이었습니다. 그저 내내 우와! 하는 감탄사만 연발했지요. 그러다가 급기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화려한 기예에 넋을 잃어서가 아닙니다. 너무도 기계보다 정교한 공연모습에 측은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지요. 공연장면에 불 꺼진 마을의 모습이나 자전거를 끌고 다니던 아이들,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지나던 아낙네, 물을 길어 나르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눈동자조차 굴리지 않고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하던 초병의 시커먼 얼굴과 “우리식대로 살자”라는 현수막도 겹쳐보였지요. 손에 땀을 쥐고 가슴을 졸이며 정말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진한 동포애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비록 인민배우니 공훈배우 대접을 받는다고 해도 왜 그렇게 측은하고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지 가슴이 답답하고 알지 못할 슬픔이 하염없이 밀려왔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모든 사람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할 때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필자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이 공연을 본 주위 분들도 모두 눈시울이 젖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한결같이 불쌍하고 안됐다는 생각을 한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금강산 여행을 가면 반드시 교예단 공연을 보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관광을 통해서라도 그들을 도왔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공연이 끝나고 해금강 호텔로 돌아오는 시간에도 금강산 호텔과 외금강 호텔이 있는 온정각일원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천 건너편 마을은 겨우 겨우 희미한 불빛만 보일뿐이었지요. 옛날 필자의 유년시절에도 우리 어버이들은 땔감으로 나무를 사용하고 개천에서 손을 불어가며 빨래를 했었습니다. 하루에 수백 수천의 관광객이 몰려 흥청망청 대는 금강산자락 이면에는 그렇게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정말 사람 사는 것이 천층만층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도 상반된 생활상은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분노마저 치밀어 올랐습니다. 금강산 관광 그거 꼭 한번쯤 다녀올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금강산 교예단 공연은 반드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강산 절경과는 다르게 가슴으로 울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감동과 전율을 느낄것입니다. 가슴으로 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금강산엘 가면 교예단 공연을 보아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