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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술 안주

홍승표 2007. 12. 10. 13:14
 

               가장 좋은 술안주

                            홍 승표(시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에 관한 전설이나 떠도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리고 술에 관한한 자칭 내로라는 주당(酒黨)이나 주신(酒神) 또한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저 역시 술에 관한한 어느 누구하고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어릴 때부터 술을 접한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들에서 일하시는 어르신들의 새참 심부름을 하면서 일찍 술을 알게 된 것 이지요. 아침과 점심사이에 먹는 새참은 흔히 두부김치에 막걸 리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술이 담긴 큰 주전자가 무겁기도 하거니와 술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한 모금 두 모금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 힘든 줄도 모르고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조금 더 커서 농사일을 돕거나 땔나무를 하고 나서는 동네 형님들이 주는 술을 아주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게 되었지요.

 

사실 어르신들도 담배는 어르신 앞에서 피는 것을 금기시하셨지만 술 마시는 것은 덮어주시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다가 정식으로 주법(酒法)을 배운 것은 고2때였습니다. 할머니 제사가 끝났을 때 아버지께서 사내가 17살쯤 되었으면 술을 좀 해야지 하시며 음복을 권하셨습니다. 짐짓 놀란척했지만 속으로는 아버지도 제가 술 마시는 것을 알고 계셨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작 고마운 것은 술도 음식이라 가려서 먹고 이른바 주법이 있다면서 여러 가지 도움 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윗분에게 잔을 올릴 때는 오른손으로 잔을 먼저올린다음 술을 따라드리라는 것이 첫 번째였다고 기억됩니다. 그리고 윗분이 주실 때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고개를 약간 돌리고 마시고 다 마시지 않을 때에도 잔에 입을 대었다가 잔을 내려놓으라고 하시더군요. 잔을 부딪칠 때도 윗분의 잔보다 아래로 하고 반드시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예의라고 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많아 자리에서 이동해서 술을 권할 때에도 반드시 오른쪽으로 가서 오른손으로 잔을 드리고 술을 따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몰래 몰래 편하게 술을 마시던 저에게 일침을 가하며 정곡을 찔러주신 것 이지요. 술에 관한한 사실상 첫 번째 스승이 아버지였다는 것은 지금도 마음속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어느 술자리에서든지 결례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저 역시 아들 녀석이 대학 입학 무렵 똑같은 내용으로 주법을 전수했습니다.


두 번째 스승은 故 임 사빈 지사님이셨습니다. 수행비서로 임사빈지사를 모시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에는 임 지사님께 받은 영향이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임포, 맏형님이란 닉네임에 걸 맞는 넉넉한 인품과 후덕한 마음씨 이웃집 아저씨 같은 편한 한 포용력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었고 배우지 않을 것이 없었습니다. 농부와 막걸리를 마시며 손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주던 일, 88올림픽때 새마을 부녀회원과 함께 열무김치를 배식하던 일, 환경미화원이나 택시 기사 분들을 위해 애쓰시던 모습이 지금도 새록새록 하기만 합니다. 어느 자리 어느 분들과 만나도 전혀 격의 없이 동화되어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경이롭고 존경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분이 매달 월급에서 소년소녀가장 돕기 후원금을 기탁하는 것을 보고 저 역시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매월 후원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로 존경스러웠던 지사님 역시 주당을 넘어 주신(酒神)에 가까운 분이셨지요. 웬만큼 드셔서는 티도 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술이 부족했다 싶으시면 공관에 들어가셔서도 술을 드실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해 늦은 가을날엔가 노인회 회장단과 새댁이라는 한식집에서 저녁식사반주로 포도주를 드신 일이 있었지요. 저녁이 끝나 공관으로 모셨더니 저를 이끌고 응접실로 가시더군요. 그러시더니 사모님께 술 한 병을 내오라 하시더니 큰 컵에 가득 채우시곤 건배하시면서 원 샷을 하라고 하시더군요. 애라 모르겠다하고 단숨에 들이켰더니 “홍비서 술 잘 하네.”하시며 반 컵 정도를 더 따라주시는 겁니다. 이름은 모르고 그 술이 양주였다고 기억이 됩니다만 집에 왔더니 취기가 갑자기 오르더군요. 아내는 도대체 수행을 하고 온 건지 술을 먹고 온 건지 모르겠다며 난리를 쳤습니다. 결국 사실대로 고백하기도 난감해서 모셔다 드린 후 다른 곳에서 한잔 했다고 둘러대고 말았지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정초에 전 현직 비서들이 공관으로 세배를 갔습니다. 반주를 겸한 저녁식사가 끝나갈 무렵 지사님께서 양주를 내어 오시더니 맥주잔에 술을 가득 채워 저의 전임비서에게 권하더군요. 그분이 거침없이 원 샷을 한 후 내근 비서에게 권했는데 절반정도를 마시더니 포기를 했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한 컵을 마신 후에는 누구도 자청하는 사람이 없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지사님께서 “시장, 군수 할 친구는   심비서와 홍비서밖에 없구나.”한 말씀 던진 때문이지요. 갑자기 비서실장께서 저도 한잔 마시겠다며 벌떡 일어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난리가 났습니다. “실장은 나이를 생각해하시면서 권하지 않으시려는 지사님을 졸라 결국 잔을 넘겨받은 실장께서 술을 드시다 말고 밖으로 뛰어 나가신 것이지요. 속칭 1종 반납을 한 것입니다. 그날 저녁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시무식이 끝나고 복요리를 하는 천미식당이라는 곳으로 복국을 먹으러 갔지요. 시원한 국물 맛에 속이 저절로 풀리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실장님께서는 입에도 대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속이 불편해 아무것도 넘어가질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그날  실장님께서는 물 한 모금도 드시지 못하는 최악의 하루를 보내셨고 지사님께선 아무말씀도 없이 웃으며 지내셨습니다.


지사님께서 술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롭게 느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수행도중 지사님께서 느닷없이 필자에게 한 말씀 던지시더군요. “홍비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술안주가 뭔지 알아?” 뜬금없기도 하거니와 무슨 의도인지 몰라 “저는 삼겹살이 제일 좋던데요.”하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빙그레 웃으시던 지사님께서 다시 한 말씀 던지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술안주는 물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하시더군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어안이 벙벙해하는 필자에게 지사님께서 새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사업을 하는 친구 분 중에 술을 한잔도 못하는 분이 계셨는데 술을 잘 마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답니다. 사업상 술을 마실 줄 아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사님께서 불쌍한 친구를 어여삐 여기사 강도 높은  프로젝트를 마련하셨다는 것이지요. 6개월 내에 소주 1병 이상을 마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답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시작 첫 주는 매일 저녁 소주 반잔에 물 반 컵을 마시고 잠자리에 듭니다. 둘째 주에는 소주 한잔에 물 한 컵을, 그다음 주엔 소주 한잔 반에 물 한 컵 반을 마시는 식이었습니다. 체내에 술을 분해시키는 효소가 만들어지도록 한다는 이치이지요. 실제로 그 분은 6개월 후에 소주 한 병을 거뜬히 마실 수 있게 되었고 사업도 더욱 번창 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주인공을 뵌 일이 있습니다. 술에 관한한 지사님을 사부님으로 깍듯이 대하더군요. 나중에 폭탄주도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대목에서 함께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쨌거나 그때부터 물이 알 콜  충격을 완화시켜  주고 위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가장 좋은 안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특별한 비법이 있습니다. 저녁모임에 참석하는 멤버의 수가 많을 때는 사전에 준비를 한다는 사실이지요. 물론 흔히 떠 올리는 보약이나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저녁 모임 1시간여쯤 전에 캔 맥주 하나를 족발이나 찐 계란을 안주삼아 드신 후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소 주량의 두 배 가까이 마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치인즉 이러합니다. 사람의 인체는 무릇 자연의 섭리와도 같다는데 있습니다. 한 여름날 오랜 가뭄 끝에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면 빗물이 땅으로 스미지 않고 도랑으로 흘러들어가지요. 너무 가문 탓에 땅이 미처 빗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체도 이와 같아서 갑자기 술이 들어가면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미처 활동을 못해 빨리 취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 시간 쯤 전에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면 아! 오늘은 술이 들어오는 날이구나 하고 인체는 대비를 하게 된다는 이치입니다. 당연히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활발히 분출되어 평소보다 많은 량의 술을 마셔도 괜찮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지요. 저 역시 2년 넘게 홍보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러한 비법의 효과를 아주 절절하게 실감하며 지낼 수 있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술과 관련한 또 다른 상식을 터득한 셈이지요.


그런데 이 상식이 통하는 또 한분을 만난 것은 우연치고는 정말 기분 좋은 우연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만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손학규지사님이셨지요. 제가 가정복지과장으로 일할 때 추석연휴에 마산이 태풍 매미로 초토화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새벽에 80여명이 마산으로 수해복구 자원봉사를 떠났습니다. 저 역시 명절에 직원을 차출하기가 난감해서 자원을 했었지요.  하루 종일 비지땀을 흘리고 돌아오는 길에 지사께서 자원봉사를 한 모든 직원들에게 술을 따라 주셨습니다.   한참동안 잔을 돌리시던 지사께서 뜬금없는 질문하나를 던지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술안주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물입니다.” 제가 벌떡 일어나 대답을 했지요. 일순간 조용해졌습니다. 느닷없는 대답도 대답이거니와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었지요. “홍 과장! 그걸 어떻게 알았어.”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전혀 생뚱맞은 대답으로 여겼는데 물이 정답이라니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지사께서는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술잔을 다시 권하시며 등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도 맥주 한잔을 먼저 기울인 후에 술을 드셨는데 특히 독보적으로 폭탄주제조 및 음용에 일가를 이루신 분이셨습니다. 폭탄주를 돌리시며 일명 爆彈辭를 시키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어 가시는데도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지요.

 

그 후에 관광, 총무, 자치행정과장으로 일하면서 그분을 가까이 모셨습니다만 참으로 인간적인 분이셨다는 기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공관에 행사가 끝나면 피곤하신 중 에도 필자와 의전 팀을 불러 폭탄주를 돌리시곤 했지요. 사람은 큰 물질이나 금전적인 보상보다도 윗분께 인정받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술안주로 물을 많이 먹습니다. 그렇다고 물만 먹는 것은 아니지요. 내장이 銅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상 물로 만 술안주를 한다는 건 죽으려고 기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 일 테니까요. 물을 마시면 아무래도 고기 등의 안주를 덜 먹게 되고 위의부담이나 체지방, 고단백, 콜레스테롤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게 됩니다. 숙취도 줄어듭니다. 여러 가지로 몸에 좋고 안주 값도 줄이고 뒤끝도 좋으니 일석이조 아닌가요. 술안주로 물이 좋은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저녁 모임 전에 맥주 한잔을 마시고 나가시는 것도 한번쯤 시도해보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거짓말 같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좋은 것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술을 마시지 않고 살아가기엔 그리 간단치가 않은 것이 현실이지요. 안 풀리던 일도 술을 마시면서 논의해보면 의외로 술술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술이 빠지면 무언가 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고 공통된 생각일 것입니다. 어쨌거나 술을 마실 수밖에 없으면 술을 즐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을 많이 드셔야할 때는 미리 한잔 걸치고 나가세요. 술 한 잔에 물 한잔도 참 좋은 어울림으로 남을 겁니다.  글쎄 하며 못 미더워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 실행해 보시지요. 새로운 사실에 공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술안주가 물이라는 거 물 그거 정말 신통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몸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