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과 금강송
홍 승표
우리민족 최대명절인 설날 연휴의 시작은 참으로 행복 했었다. 한동안 쥐약 먹은 고양이처럼 빌빌거리던 국가대표 축구대표선수들이 간만에 화끈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축구가 최근들어 5백 시간이 넘도록 무득점의 졸전을 펼쳐 체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월드컵 4강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국민들의 자존심도 완전히 무너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때 비록 약체이기는 하지만 축구대표 팀이 거둔 승리는 설날 명절연휴를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시작된 명절이 마지막 날 정말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일순간 초상집 분위기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 타버린 것이다. 황당하다 못해 온몸에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모두가 경악한 희대의 사건이었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화재현장을 생중계한 것도 초유의 일이지만 그걸 새벽까지 지켜보아야하는 필자 스스로가 정말 한심하기만 했다.
그러나 더욱 한심한 것은 그 후였다. 화재발생과 초동진압 실패의 책임소재를 놓고 특유의 떠넘기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누구의 잘잘못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저한 원인규명과 원형복원 등 대책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그리 마땅치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당국에서 2백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3년에 걸쳐 복원하겠다고 서둘러 발표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이 순간 복원계획 발표가 그리 중요한 건지는 자세히 알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서둘러서 좋은 일이 있고 서둘러서는 안 될 일이 있는 법이다.
전문가들조차 졸속행정의 표본이라며 성토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원에 필요한 금강송 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설상 가상 금강송을 구해도 건조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3년내에 복원한다는 발상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숭례문 복원에 사용할 수 있는 금강송은 우리나라에 90그루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턱없이 부족한 분량이다. 또 다른 고민이 생긴 셈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도 아니다. 금강산에 있는 금강송을 가져오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두 차례에 걸쳐 금강산엘 다녀온 필자는 정말 금강산에 있는 금강송들이 숭례문 복원에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남북한의 이념적 논리를 떠나 숭례문은 우리민족의 얼이 담긴 역사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복원기간을 서두를 필요도 없다. 이웃 섬나라의 경우만 해도 숭례문보다 못한 2층규모의 문화재를 50년에 걸쳐 복원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숭례문이 불타버린 것은 너무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 국제적으로도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완전 소실되었으니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숭례문화재사건이 가져다준 교훈은 너무도 많다. 우리 모두의 가슴을 시커멓게 태운 숭례문 화재사건이 우리 모두를 다시 곧추세우는 보약이 되었으면 한다. 비록 불에 탄 숭례문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언제까지나 새록새록 우리가슴에 살아 숨 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