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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으로 만든 동물원

홍승표 2009. 7. 14. 10:36

한손으로 만든 동물원

 

한강 제방이 뚫려 물난리를 겪은 일산에 신도시가 한창 건설될 무렵 고양에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청에서 시정홍보를 담당하는 실무책임자로 일했던 것이지요. 공보실은 홍보는 물론 문화유산관리와 관광분야의 일도 함께 했었다고 기억이 됩니다. 홍보부서 특성상 당연히 기자들과의 만남이 잦았지요. 가끔씩 술자리도 함께 했습니다. 접대비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예산으로는 감당이 어려울 지경이었지요. 개인 돈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시장께서 도움을 주셨지만 강물에 돌 던지기였지요.

틈틈이 모아두었던 쌈짓돈이 봇물 터진 듯 흘러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잘못하면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도 들었습니다. 팀장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지요. 나이가 아홉 살이나 많은 팀장은 성실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석에서는 형이라고 불렀지요. 그만큼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겁니다. 의외의 아이디어를 내놓더군요. 친구 녀석이 음식점을 하는데 그곳을 이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값싸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지요.

 

음식점을 하는 친구의 인상은 참으로 강렬했습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굳게 다문 입과 강렬한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던 것이지요. 더구나 오른팔이 의수인 외팔이였습니다. 범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필자의 고민을 듣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적극 도와주겠다고 하더군요. 첫 만남이었는데 의외로 소통이 잘된 셈이었지요. 그는 역시 간단치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기자들도 많이 알고 고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당발이었던 것이지요. 그 후로 그가 운영하는 식당을 거의 절반 가격으로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어려운 시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었지요. 그를 알게 되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에 또 다시 놀랐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경북 상주에서 평범한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머슴을 살다가 14살 때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했다고 하더군요. 서울에서 숱한 잡일을 하면서도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지요. 토목기사가 되려는 꿈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고교 졸업 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고 월남 파병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오직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귀신 잡는 해병전사답게 잘 싸웠고 화랑무공훈장까지 받는 등 최고의 勇士로 영웅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다음 전투에서 오른팔을 잃게 되었다지요. 한순간에 귀신 잡는 해병용사에서 傷痍군인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의병 제대를 한 그에게 남은 것은 달랑 39만원이었다고 하더군요. 16명의 해병 상이군인과 함께 고양으로 내려가 공동묘지 한구석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곳을 떠나 인근으로 생활터전을 옮겼다지요. 무작정 무허가 판잣집에서 지내면 희망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처음에 골재채취를 시작했는데 일이 잘돼 많은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택시회사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었지요. 보험일도 하고 중고자동차 매매업도 하는 등 몸이 부서지라고 일만 했다고 합니다. 제법 돈을 모았을 때 뜻하지 않은 대 홍수를 만나 큰 피해를 당했다지요.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귀신 잡는 해병기질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수마가 휩쓸고 간 그 터에 양어장을 만들고 동물을 키우기 시작했다지요. 그러다가 내친김에 지난 2000년 동물원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도마뱀과 오랑우탄부터 사자와 호랑이에 이르기까지 2000마리의 동물들을 기르게 된 것이지요. 사정이 좋아지자 정치판에도 뛰어들어 시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그린벨트 위반으로 두 차례나 검찰 수사를 받고 한차례 구속되어 감옥살이도 했다고 하더군요. 언론에서 집중취재를 당하고 검찰수사까지 받으면서 문을 닫으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언론보도를 본 경기지사께서 나라에서도 하기 힘든 일을 개인이 했는데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며 발 벗고 나섰다지요.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요. 동물원을 찾은 지사를 만난 그와 그의 부인은 그 동안의 설움이 북받쳐 올라 한동안 목 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지사도 눈시울을 붉히며 걱정 말라며 위로했다더군요. 반신반의했는데 지사의 도움으로 고양시로부터 동물원 증설 허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랍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고양시에서 동물원 바로 옆에 화훼단지를 개설키로 했다는 것입니다. 화훼단지가 개설되면 그야말로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더군요. 그의 집념과 땀의 결실이 제대로 영글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에버랜드와 같이 재벌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닌 사설 동물원은 그가 운영하는 쥬쥬 동물원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의 가슴에는 恨이 맺혀 있다고 합니다. 한 팔을 잃은 고통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의 가슴에 맺힌 한은 월남전에서 잃은 오른팔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동물원에서 물청소를 하다 전기에 감전돼 숨진 동생도 가슴에 묻고 산다는 것이지요. 그런 그가 이제 눈물을 감추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사회복지시설의 고아나 노인들에게 동물원을 무료로 개방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런 일이지요. 그는 이제 남은 생을 더욱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살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팔당에서 만났을 때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해본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짓던 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그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가 이제 어느 정도 삶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그의 이러한 인생 역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져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사랑받는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때쯤 그의 너털웃음은 호탕한 웃음으로 다시 거듭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