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동굴속의 은하수

홍승표 2010. 11. 3. 08:30

동굴 속의 은하수

 

옛날 시골에 살 때 원두막은 밤을 지키던 요새였습니다. 그때 아이들은 수박이나 참외서리를 즐겨했었지요. 아이들은 장난삼아 서리를 했지만 졸지에 다 키운 과일을 도둑맞은 사람의 마음은 숯덩이가 되곤 했습니다. 과일 몇 개를 잃은 것보다 덩굴들이 많이 훼손되기 때문이었지요. 급기야 서리꾼들로부터 과일이나 농작물을 지키기 위한 초소가 만들어졌으니 그게 바로 원두막입니다. 원두막은 밭 중간에 제법 높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잠도 잘 수 있습니다. 원두막은 초소가 되고 일을 하다 지치면 한숨 돌리거나 낮잠을 자는 쉼터로도 훌륭하지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거나 새참이나 점심을 먹는 공간으로도 더없이 좋습니다.

 

가끔 원두막에서 밤을 지새울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선풍기조차 없었던 그 옛날 원두막이 집보다 더 좋았던 것이지요. 원두막에서 지내는 밤은 그윽했습니다. 고혹한 달빛이 내리는 날엔 신선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지요. 가끔 반딧불이가 어둠을 밝히며 떼를 지어 날아다닐 때면 마치 은하수를 방불케 했습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별들은 더욱 반짝거리고 멀리서 유성의 꼬리가 끝도 없이 내려오곤 했지요. 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습니다. 때로 농사에는 비가 보약이 될 때가 많았었지요. 아버지나 형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어둠 끝자락으로 여명이 밝아 오곤 했습니다.

 

 

 

그 옛날 반딧불이 그것은 단순한 곤충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것은 한 여름 밤의 꿈이고 희망이었습니다.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밤하늘을 수놓는 반딧불이의 群舞를 보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기불도 없었던 그때 호롱불보다 더 반짝이는 반딧불이가 주는 메시지가 그만큼 강렬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반딧불이 그것은 소중한 친구이자 꿈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힘이 들고 고달픈 날에도 그를 보면 어느새 그와 함께 날아다니는 또 다른 저를 만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새워 함께 세상을 날아다니며 꿈꾸었던 세상이 바로 천국이 아니었을까 돌이켜봅니다. 그런 반딧불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에 꿈이 사라진듯해 아쉽기만 합니다.

 

꿈같은 반딧불이 그 좋은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은 동굴 속 이었습니다. 뉴질랜드 와이토모(Waitomo)에 있는 동굴이었지요. 와이토모는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Maori)족의 말로 “구멍을 따라 흐르는 물”이라고 합니다. 이 동굴은 그리 크지 않더군요. 와이토모 지역은 원래 석회암 지대로 많은 종유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에만 사는 반딧불이가 있어 유명해진 곳이라고 합니다. 동굴로 걸어 들어가 나룻배로 옮겨 탔습니다. 배를 타기 전 가이드로부터 반딧불이 놀랄 수 있으니 절대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엄명이 내려졌지요. 모두들 벙어리가 되었고 눈빛만이 서로의 마음을 나눴습니다. 세상에 대단한 공연도 아닌데 이토록 숨을 죽여야만 하는지 의아하기만 하더군요. 배도 제주도 쇠소깍을 오르내리는 뗏목 테우처럼 줄을 잡고 움직이는 자그만 배였습니다.

 

호기심과 기대를 가득히 안고 들어간 칠흑 같은 어둠 속 동굴 천정에는 수도 없이 많은 반딧불이가 붉고 푸른빛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일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더군요. 반딧불이가 연출하는 빛의 향연은 은하수보다 더 영롱하고 황홀했습니다. 놀라운 빛의 향연은 상상하지 못한 감동으로 물결쳐 밀려왔습니다. 배를 탄 사람들은 졸지에 넋을 잃은 듯 했습니다. 어느 인조물도 이렇게 숭고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은 연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뉴질랜드를 자연의 보석상자라고 하는데 와이토모 동굴이야말로 자연이 가져다준 보석중의 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굴에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반딧불이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안식년을 가져야 하는데 몇 년이 될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이 엄청난 비용을 주고 이곳 반딧불이 개체를 사가지고 가 키워보았지만 환경이 맞지 않아 몰살되었다고 하지요.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그들의 짧은 생각에 혀를 끌끌 차게 됩니다. 인공적으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분명 있는 법이지요. 뉴질랜드 여행에서 와이토모 동굴의 반딧불이의 공연을 본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그 진풍경을 담을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지요. 지금도 와이토모 동굴의 반딧불이 그 빛은 은하수보다 영롱하게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빛은 오래도록 꿈으로 남아 저의 가슴속에 살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