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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 봅니다.

홍승표 2011. 3. 22. 15:16

일본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질서 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들의 저력은 감동을 넘어 소름끼치도록 무섭기까지 합니다. 사상 최악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덮치고 방사능이 유출되는 등 일본 전역이 공포에 휩싸였지만 그들은 특유의 침착함과 냉정함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절제와 인내, 질서와 배려,그 모습들이 너무도 대단해 세계인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주유소에는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들이 늘어섰지만 차량 한 대 씩 순서에 따라 움직이고 경적을 울리거나 뒤엉키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대형마트에는 주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새치기를 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지요. 대피소에서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없고 서로 피해를 주는 말이나 행동이 일체 없다고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책임지라며 고함을 치는 사람은 전혀 없다지요.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물을 받기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질서있습니다♠


취재차 일본에 간 우리나라 기자가 식당엘 들어갔다고 합니다. 라면을 먹고 있는데 진동이 심하게 느껴졌다지요. "지진이 아닐까?" 불안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창문 밖으로 옆 건물이 기울면서 물이 사정없이 아래로 쏟아지더라는 겁니다. 실제 상황이었지요. 식당 주인은 침착하게 20여 명의 손님을 20여 초 만에 밖으로 대피시켰다지요. 혼비백산 거리로 뛰쳐나온 건 자신뿐이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침착하고 질서정연하게 걸어 나오고 주인은 손님들이 모두 대피한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지요. 지진이 멎기를 거리에서 가만히 기다리던 라면가게 손님들은 진동이 멎자 곧장 가게 안으로 들어왔답니다. 그러곤 각자 먹은 라면 값을 치르곤 총총히 여진을 피해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들은 죽은 줄 알았던 가족을 만나면서도 숨죽여 울었다고 하지요. 그 절제된 행동이 감동스럽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헬기로 가까스로 구조돼 가족을 만난 사람들은 전기도 물도 없이 며칠을 버텼지만 모두가 겪는 고통이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지요. 자신이 울면 더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소리죽여 울더라는 겁니다.

일본은 지극히 조직화되고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입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사전에 마련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것이지요. 이러한 절차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은 참혹함 속에서도 냉정하리만큼 침착함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너무도 질서에 순응하다보니 기계적이라는 비판도 있지요. 저도 일본을 열 번 정도 가보았지만 대중교통도 조용합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절대 휴대폰 소리를 내지 않는 게 관례지요.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말을 해도 속삭이듯 합니다.

이번에 대지진으로 엄청난 재난을 당한 그들이 대처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새삼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 사람들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대개 이러한 참상이 벌어지면 분노와 공포에 휩싸이는 게 당연하지요. 때로 나라를 원망하거나 죄 없는 사람에게 공연히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상점이나 남의 물건을 약탈하거나 더 달라고 먼저 도움을 받겠다고 아우성치는 게 통례이지요. 이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희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상점을 약탈하기보다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지요. 구호품과 먹을 게 턱없이 부족했지만 나눠주는 만큼만 조용히 받아간다는 것입니다. 사재기도 없고 생필품을 사기위해 하루 종일 줄을 서도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지요. 주유소에서 기름을 더 넣겠다고 생떼를 쓰는 일도 없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 몫이 부족하지 않게 배려하는 것이지요.

대지진이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지만 결코 일본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은 듯합니다. 일본사람들의 배려와 관용의 정신이 지진보다 더 굳건했기 때문이지요. 일본이라는 나라의 시스템과 일본 사람들의 정신이 어우러진 저력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내공과 저력을 바탕으로 이뤄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의 저력으로 미루어볼 때 고통과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 위대한 인간승리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휘발류를 넣기위해 늘어선 차량들, 새치기도 경적도 없고 질서 정연합니다♠

일본 언론도 국익을 생각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됩니다. 유족 인터뷰는 거의 찾을 수 없고 시신 수습 장면도 멀리서 촬영한 화면이 대부분이지요. 공포를 조장하거나 과장되고 자극적인 내용의 보도를 자제하는듯합니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객관적인 보도를 통해 위기 극복의 정신을 살려내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자극적인 장면이나 극한 상황의 밀착취재가 사태 수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행이 이번 대지진 참사 보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언론이 대참사니 아비규환이니 쑥대밭같은 선정적인 보도행태를 보인것은 우리 언론의 한계를 보여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정말 아닙니다. 해외 언론들은 "일본인의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보도하고 있지요. "인류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걸 일본이 보여줬다"며 극찬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지진 참사를 당하고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일본 사람들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우리로서는 본받을 점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 극도로 혼란해지고 더 먹고 더 갖겠다고 약탈까지 벌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일본을 끌어내리는 말을 하거나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이 있습니다. 안 될 일이지요. 말 많고 상대방을 험담하는 사람치고 잘되는 사람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을 배우고 도와주는 것이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 대한 예의이고 도리겠지요. 反日감정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온 세계 사람들도 일본 돕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열고 일본 사람들의 절제와 준법, 질서와 배려, 위기극복의 저력을 배워볼 때가 아닐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