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서호(印象西湖)
“杭州에 가서 西湖를 보지 않으면 항주에 갔다 왔다고 할 수 없고 서호에 가서 인상서호를 보지 않으면 서호에 갔다 왔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이 항주 고을이고 그중에서도 서호가 절경이라는 말이지요.
서호는 중국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인 월나라 미인 서시(西施)가 태어난 곳입니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나라 왕 구천(勾踐)이 미인계로 서시를 부차에게 보낸 뒤 쓸개를 먹으며 원수를 갚아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성어가 만들어졌다지요.
시성(詩聖) 이태백이 달을 노래한 곳이기도 합니다. 달나라의 계수나무를 금도끼로 다듬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보금자리를 지어 보자는 달 타령이지요. 이태백이 화창한 날의 서호는 서시의 화장한 모습이고 안개 낀 날의 서호는 서시가 화장하지 않은 모습이라고 비유하며 서호의 아름다움을 극찬했습니다.
그런데 그 서호에서 펼쳐지는 공연이 그야말로 환상이라는 것이지요. 항주 서호엘 가서 인상서호 공연을 보았습니다. 인상서호는 영화감독 장이모우(張藝謀) 등 3명의 감독이 다양한 기법으로 서호의 산수화 같은 풍경과 고도 항주에 전해지는 전설을 가미해 연출한 공연입니다. 계림 양삭에서 공연되는 인상 유삼저 (印象刘三姐)공연이 대성공을 거두자 장이모우 감독이 서호를 배경으로 백사전(白蛇傳)이라는 전설을 가미해 또 다른 작품을 완성한 것이지요.
서호의 전설 백사(白蛇)와 총각의 사랑 이야기인 인상서호 공연은 5부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는 만남(相見), 2부는 사랑(相愛), 3부는 이별(離別), 4부는 추억(追憶), 5부는 인상(印象)으로 구성되었지요. 서호의 잔잔한 물결을 무대로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연출됩니다. 서호에 전해지는 신화와 전설이 배우들의 몸짓으로 싱그럽게 되살아나고 고혹한 빛이 더해져 마치 꿈을 꾸는 듯 환상에 빠지게 되지요. 애간장을 녹일 듯 애절하고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독특한 음악과 기묘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조명이 어우러집니다. 인상서호 공연을 보면 신선의 경지가 무언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사실 공연의 줄거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단조롭습니다. 그러나 넓은 호수를 무대로 물과 빛과 소리와 색이 어우러진 공연은 그야말로 환상이었지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상력과 웅장한 스케일에 관람객들의 환성이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어둠 속 물 위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배우들의 몸짓(群舞), 어둠을 헤집고 날아드는 다양한 색과 높낮음의 현란한 빛(照明),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산수화를 보는듯한 꿈같은(夢幻的) 분위기가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합니다.
공연은 어둠이 짙게 내린 호수의 한편에서 한 마리의 白鶴이 날아들며 시작됩니다. 어느새 젊은 서생으로 변하더니 다른 한편에서도 또 한 마리의 백학이 날아들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합니다. 이들은 작은 배를 타고 호수를 가르며 사랑을 키우고 호수는 두 사람만의 공간이 되는 듯합니다. 서호에 많은 백학들이 나타나 이들을 축복하고 또 물고기들 역시 영기(令旗)를 가득 채우며 호수를 자유로이 노닙니다. 축복과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 찬 세상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불꽃처럼 즐거웠던 시간이 가고 요란한 우레와 함께 고난이 찾아옵니다.
여인 백학이 숨지고, 서생 백학이 다시 호수를 찾았을 때 옛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러나 꿈속인 듯 아련하고 애잔한 풍경 속에 한 쌍의 연인이 나타났다 다시금 조용히 물살을 가르며 사라집니다. 추억이자 그리움이지요.
고요한 밤 호수에 은은한 달빛과 화려한 조명의 조화, 물속에 담긴 달과 물속으로 뛰어드는 빛의 신비로움, 물위를 圓舞하는 배우들의 춤사위와 몸짓, 나뭇잎을 간질이다 숲을 흔들고 산을 통째로 삼킬 듯 휘몰아치는 曲調, 호수 가득 뛰어다니며 흐드러지게 넘쳐나는 물소리,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는 時空속에 아름다운 전설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3년 전 초연(初演)된 이래 매년 5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려든다니 이 공연의 저력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계림 양삭의 인상 유삼저와 함께 연간 3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창출하는 세계적 공연으로 자리 잡은 것이지요. 자연과 인간이 빚어내는 삶의 예술적 승화나 가치는 그 영역과 한계가 없는 듯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빼어난 경관과 좋은 관광자원이 많습니다. 보문단지의 호수나 서울대공원 저수지를 활용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중국의 인상 유삼저(刘三姐)나 인상서호 같은 공연이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요. 우리나라 예술인 중에도 장이모우를 능가하는 예술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이러한 믿음이 더욱 확신을 갖게 되지요.
중국 여행에서 인상 유삼저나 인상서호와 함께한 시간은 그 자체로 행운이고 축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신선이 되어 본 시간이었지요.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공연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