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를 보며
“날 세상에서 제대로 살게 해 줄 유일한 사람이 너 란걸 알아. 나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 너를 붙잡아야 할 테지만.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너에게서 떠나 줄 거야~”
‘나는 가수다’란 방송프로에서 임재범이 부른 ‘너를 위해’라는 노랫말의 일부분입니다. 그날 맨 마지막에 출연한 임재범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더군요. 아마도 평소 방송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듬성듬성하게 자란 수염에 무표정한 얼굴,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눈빛, 이미 그는 ‘사랑보다 깊은 상처’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그 존재감을 만천하에 보여주었었지요.
‘나가수’에서 그는 다시 ‘너를 위해’ 한 곡으로 그의 저력을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말을 잊은 듯 했습니다. 넋이 나간 듯 보이거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더군요. 역시 그의 카리스마는 대단했습니다. 그만의 음색도 독보적이고 처절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래를 마치고 나온 그가 윤도현을 와락 끌어안으며 한마디 던지더군요. “로큰롤 베이비” 그 대단한 윤도현을 아기 취급하는 가수가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듀엣으로 불렀던 박정현도 감격해 하더군요. 그에 대한 신비감마저 갖고 있었던 듯 했습니다.
그런 그가 다음 경연에서 ‘빈잔’이라는 트로트 가요를 록 버전으로 불렀지요. 큰 북과 함께 코러스를 하는 여가수도 등장한 열정적인 무대가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더군요. 하루 3시간 밖에 안자고 연습을 했다는 겁니다. 아내가 갑상선암으로 투병중인데 그는 그동안 우울증, 조울증으로 무기력하게 살았다지요. 가장 노릇을 제대로 못하며 어렵고 힘겨운 생활을 해왔다고 합니다. 직업이 가수인데 노래를 하지 않아 월수입이 저작권으로 받는 100만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인 기피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투병중인 아내와 딸을 위해 ‘나가수’ 출연을 결심했고 아내와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 삭발을 했다고 하지요. 그의 노래가 감동을 주는 건 바로 이 같은 삶의 애환이 절절하게 묻어나기 때문일 겁니다. 삶의 애환을 접어두고라도 삶의 근원까지 송두리째 뽑아내는 격정적인 소리와 절규하는 몸짓을 보면 숨이 막히고 온 몸이 굳어지는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그만이 그런 게 아니지요. ‘나가수’에 출연한 가수들이 혼신을 다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온몸으로 느껴지는 감동에 몸서리치게 됩니다. 가수로서의 자존심과 가수로서의 생명을 걸고 사력(死力)을 다하는 열정이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 자체로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순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실 ‘나가수’에 출연하는 가수들 면면이 톱 가수 반열에 오른 사람들입니다. 최고의 가수를 불러 놓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인 셈이지요. 각자 개성이 다르고 독특한 음색과 표현기법이 다른데 순위를 매긴다는 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이 프로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건 예상 밖의 일이지요. 아마도 극적인 걸 좋아하는 우리나라 국민성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교수를 평가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지요. 저도 가끔 심사위원장으로 일할 때가 있지요. 그러나 회의 운영만 했지 한 번도 평가를 해본 일은 없습니다. 스스로 전문 지식이나 식견이 부족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가수’에서의 평가단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첫 번째 탈락자가 김건모였지요. 많은 사람들이 의외의 결과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는 국민가수로 불릴 만큼 이미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은 더욱 충격이었을 겁니다.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입었을 테지요. 오죽하면 의외의 결과에 놀란 사회자가 그냥 나가버려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자진 하차 형식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김건모가 노래를 못 부르는 가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의 탈락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객기를 부린 오만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김범수도 1위를 한 다음 경연에서 꼴찌를 한 걸 보면 당일 컨디션이나 선곡도 중요한 듯합니다. 임재범도 1위를 한 다음 경연에서 4위에 그쳤고 컨디션이 안 좋아 입원까지 했지요. 어느 개그맨의 멘트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풍토 때문일 겁니다. 그만큼 출연 가수들은 긴장감을 넘어 고통스런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나가수’를 기다리게 됩니다. 시청률도 급상승하고 있지요. 그러나 시청률에 급급해 이 프로가 독이 되지 않도록 해야만 합니다. 독사가 물을 먹으면 독이 되지만 소가 물을 먹으면 젖이 된다는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가수 김광석이 이런 말을 남겼지요. “나는 가수다. 가수는 노래꾼이다. 노래로 밥 먹고 잠자고 꿈꾸며 살아간다. 나는 매일같이 라이브 무대에 서고 싶다.” ‘나가수’를 보면서 문득 ‘나는 누군가?’라는 화두(話頭)를 던져 봅니다. 분명 제 삶에도 보이지 않는 경연이 벌어지고 있고 당연히 평가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김광석이 서고 싶다던 라이브 무대는 제가 살아가는 매 순간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나가수’의 가수들처럼 매 순간 사력을 다한다면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의 삶에 감동받는 그런 인생이 될 것입니다. ‘나가수’를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