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판 공방을 살려야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문화유산 중에 금속활자가 있습니다. 금속활자의 기원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양분돼 전해지고 있지요. 고려시대 기원설은 문종 때이고 조선시대 기원설은 태종 때라고 합니다. 당연히 세계 최초입니다. 조선 태종 때인 1403년의 설을 따른다고 해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40년 전후에 활자를 주조했던 때보다도 40여 년 앞서기 때문입니다.
‘직지’는 1377년에 인쇄되었으니, 1455년에 인쇄된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구텐베르크의 성서(聖書)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것이 됩니다. 그러나 기록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진 ‘고금상정예문’이라는 책은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상 앞서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순수한 우리 기술로 세계 최초의 발명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조상이 금속활자를 인류 역사 최초로 발명했다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자랑이자 자부심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항상 문화를 수입하기만 하던 중국을 제치고 금속활자를 먼저 발명했으니 대단한 일이지요. 고려가 당시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금속활자의 과학적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고려인들은 청동 주조 기술에 청동 은입사(銀入絲) 기술까지 갖췄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이런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금속활자는 놋쇠활자(靑銅活字)·구리활자(銅活字)· 납 활자(鉛 活字)· 쇠 활자(鐵 活字)· 아연 활자(亞鉛 活字) 등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그러나 순수한 금속만으로 활자를 만들어 쓰면 녹이 자주 나거나 오래 견디지 못하므로 오래 견딜 수 있도록 합금으로 만든다고 하지요. 활자를 주조할 때에 글자 획을 제대로 내게 하거나 끓여서 녹인 다음 식혀서 뒷마무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합금으로 활자를 만듭니다. 금속활자는 어느 성분이 많은가에 따라 명칭이 정하여지지만 주성분 이외의 다른 금속의 성분도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금속활자는 밀랍으로 만든 가죽을 흙으로 싸서 구운 다음 밀랍을 풀어버리고 그 공간에 쇠를 녹여 부어 활자를 만드는 고착식과 이미 만들어진 주물토로 형체를 만들어 그 사이에 쇳물을 부어서 활자를 만드는 조립식이 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이 바로 직지(直指)입니다. 직지는 2001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고려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의 것임이 세계적으로 공인된 것은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 말의 사주본(寺鑄本)인《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 공개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1377년 청주(淸州) 흥덕사(興德寺)에서 주자(鑄字)한 금속활자로 찍은 것임을 발문(跋文)에서 밝히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1972년 '세계 도서의 해' 기념 전시회를 통해 알려지게 진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보물이 프랑스에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이를 발견해 낸 것은 다행한 일이지요. 우리의 ‘직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문화유산 가운데 해당 국가에 있지 않은데도 선정된 유일한 사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직지를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했을 때 책이 한국에 있지 않아 불합격 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네스코 당국은 이 책은 지구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책이기 때문에 소재가 어딘가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하지요.
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금속활자를 최초로 발명한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이것은 당시 고려의 문화∙경제∙정치력이 세계 최고의 수준에 있었다는 걸 방증(傍證)하는 것이지요. 고려는 한마디로 최고의 선진국이었던 셈입니다. 직지가 우리나라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파주 출판단지에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활판 인쇄소가 있습니다. 4년 전 문을 연 ‘출판도시 활판공방’은 그야말로 디지털 시대에도 꿋꿋하게 남아 책을 만들고 있는 유일한 활판 인쇄소지요. 활판 인쇄는 말 그대로 글자를 만들고(鑄造) 납 활자를 일일이 끄집어내어(文選) 이를 조판(組版)한 뒤 인쇄·제본까지 수(手)작업을 통해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1980년대 들어 공정이 훨씬 간편한 사진식자 인쇄방식이 도입되면서 활판인쇄는 사라지게 되었지요. 모든 걸 사람 손으로 하다 보니 인건비가 많이 들고 채산성도 크게 떨어진다고 합니다. 경제 만능시대에서 활판 인쇄소가 없어진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활판공방에서 만들어지는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장인(匠人)의 손으로 만들어진 예술품인 것이지요. 요즘 만들어지는 책은 백년도 못가지만 활판공방에서 만들어지는 책은 천년을 간다고 합니다. 한지(韓紙)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책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요.
시집 한권을 만드는데 두 달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집을 만든 지 3년이 지났지만 이제 고작 22권을 만들었다지요. 100인의 시집을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 시집은 작가 당 천부만 찍는 한정판이라지요. 모두 시인이 직접 서명과 날인(捺印)을 한다고 합니다. 정말 정성이 가득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끄러운 요즘 활자와는 다르게 다소 투박하지만 단아하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두 겹을 접어 엮은 한지의 감촉이 어머니의 손길처럼 넉넉하기만 합니다. 성형수술로 뜯어고치고 짙게 화장을 한 얼굴이 요즘 책이라면 자연 그대로 화장도 하지 않은 맨 얼굴 같은 책, 요즘 책이 맥주 같은 술이나 소주나 양주에 맥주를 섞은 폭탄주 같은 것이라면 파전이나 두부 김치를 안주 삼아 마시는 막걸리 같은 책, 눈조차 뜨기 어려운 햇살 같은 책이 요즘 책이라면 은은하게 드리우는 달빛 같은 책이 바로 활판 공방에서 태어나는 책입니다.
활판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은 40대 초반의 젊은이입니다. 10년 전부터 공방을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전국을 다니며 활판 인쇄 기계를 수집했다지요. 그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를 한 나라에서 사진식자로 넘어가는 중간고리인 활판 인쇄가 사라지는 일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라에서도 못하는 일을 해낸 것입니다.
그런데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채산성이 맞지 않아 그가 운영하는 시월(十月)이라는 출판사 이익금을 털어 넣어 경영한다지요. 그리고 지금 일하는 분들이 일흔이 넘고 팔순이 가까운 분도 있는데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금속활자를 최초로 발명한 나라에서 활판 인쇄소가 사라지는 건 정말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지요. 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의 위상에도 격이 맞지 않는 일입니다. 활판공방을 살리는 일은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시대적 요청이자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