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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에서*^*

홍승표 2011. 12. 8. 15:33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항구 도시 통영엘 다녀왔습니다. 통영은 삼도수군을 총괄하는 통제사가 있던 '통제영(統制營)'에서 비롯된 이름이라지요. 통영에는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습니다. 동 피 랑으로 불리는 벽화 마을이지요. 통영의 대표적인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자리 잡은 마을로 ‘동 피랑’이란 이름은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3년 전 통영에 갔을 때는 이 마을을 돌아보지 못했지요. 동 피 랑 마을이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최근에야 이 마을이 통영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떠오른 걸 알게 되었지요.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라 통영 시내와 주변 경관을 돌아본 뒤 곧바로 동 피랑 마을을 찾았습니다.

 

제멋대로 꼬불꼬불 구부러진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지요. 강구 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담벼락마다 운치 있게 그려진 벽화가 마을 전체를 뒤 덮고 있었습니다. 벽화는 저마다 다른 모습과 다른 색상으로 그려져 있더군요. 소박하게 그려진 것도 있고 많은 정성이 엿보이는 그림도 있었습니다. 이 마을은 옹기종기 붙어 있는 집들과 담벼락이 이어져 마치 성벽을 쌓아 놓은 듯 보이더군요. 동 피랑은 이순신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 포루( 東 砲樓)가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원래 통영시는 지난 2007년 마을을 철거한 후 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고 하지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쫓겨날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민들을 살릴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은 것이지요. 이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 벽화 사업을 제안했다는 겁니다. 마을을 떠나면 살길이 막막하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마을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는 화가 등 또 다른 사람들이 벽화를 그렸다는 것이지요. 벽화는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합니다. 벽화를 위해 쓰인 돈은 불과 2500만원이었다지요. 발상의 전환이 큰 돈 들이지 않고 마을을 새롭게 되살린 것입니다. 삶의 애환이 서린 터전을 지키고자하는 마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지요.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는 명성이 결코 부끄럽지 않은 관광 명소지요. 그러나 진정한 통영의 가치는 사람 냄새가 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을을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킨 꿈과 저력이 있다는 것이지요.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서로 다릅니다. 저마다 內在되어 있는 가치 기준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시를 쓰는 시인들은 사물이나 형상을 볼 때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같은 공간에 함께 있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은 제 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외형적으로는 같은 눈을 가졌지만 다른 저마다 감성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내 나름의 눈과 내 나름의 가치관을 가져야만 합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줄 아는 자신만의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요.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사물과 자기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물의 가치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 피랑 마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면 이 마을은 벌써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마을을 살리고자하는 애정과 탈바꿈시켜 보겠다는 열정이 마을을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게 한 것이지요. 터무니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터무니는 터와 무늬의 합성어이지요. 터는 집이나 건물을 지은 자리를 말하고 무늬는 형태인 셈입니다. 터무니가 없다는 본래의 의미는 집이나 건물을 지은 형태나 흔적이 없다는 뜻이지요. 집이나 건물을 지었던 곳은 어떤 형태로든 흔적이 남게 마련입니다. 주춧돌이나 다른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 터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고 무슨 말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게 됩니다. 한마디로 거짓말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연유로 근거 없이 허황되고 믿을 수 없는 말을 터무니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 마을이 통영시의 계획대로 공원이 되었다면 이 언덕 마을의 터와 무늬는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 공원에 과연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까 의문이 드는 대목이지요. 아닐 것입니다. 터무니없는 일이지요. 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위에 마련된 공원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통영은 먼 바다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지요. 애꿎게도 가진 것 없는 서민들만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뻔 했던 것입니다. 벽화 마을로 새 단장한 것은 잘한 일이지요. 터와 무늬를 지킨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삶의 애환이 서린 언덕 마을을 지킨 주인이자 색다른 관광 명소를 만든 주역입니다. 터와 무늬를 소중히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사랑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