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봉의 소나무
새 筍이 연초록 얼굴로 세상을 기웃거리는 4월의 산과 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롭기만 합니다. 그것은 지난겨울 모진 눈보라와 세찬 바람을 이겨낸 끈질긴 생명력의 원천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주말에 산에 드는 일은 그래서 행복하기만 합니다. 산은 어제 본모습이 오늘 다르고 내일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요즈음 산은 정말이지 하루가 다르게 변합니다. 아니 오전이 다르고 오후가 정말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니 며칠 만에 찾아보는 산의 모습은 변한정도가 아니라 다른 곳이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갖게 되는 것이지요.
산에 들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가 없습니다. 흐드러지게 웃고 있는 산수유나 진달래, 벚꽃, 그리고 저마다 다투어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잎이나 가지 때문만은 아니지요.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새들의 노래 소리나 얼굴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바람 때문도 아닙니다. 산에 들면 돌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산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산에 드는 순간 세상 밖의 일은 이미 안중에도 없습니다. 마음은 벌써 세상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저 좁은 세상에서 뭐가 그리 잘났다고 서로 아옹다옹 헐뜯고 다투며 살아가는지 그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토끼 재를 오르는 안개 가쁜 숨을 몰아쉰다. /산허릴 휘감는 안개 발걸음을 재촉하고/신명난 계곡의 물소리 흐른 땀을 씻는다.// 시루봉가는 길목마다 초록 물결 넘실대고/넉넉한 둘레마다 새 筍 돋는 풀꽃바다/充血된 꽃망울들이 앞 다투어 피고 있다//형제봉으로 달려가는 새소리 바람 소리/한 그루 나무로 서서 華城 자락을 바라본다/찌들은 삶의 더께를 씻고 숲이 된다. 山이 된다.//돌아서는 아쉬운 발길 산자락이 붙잡는다./追伸으로 던져보는 해말간 웃음소리/빛 부신 메아리로 살아 누리가득 쏟아진다.//拙詩 광교산에서 -全文
주말에 산에 들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것은 산이 넘치는 생명력으로 세월에 걸맞게 탈바꿈하며 우리를 포용하기 때문 입 니다. 광교산에 들어 싱그러운 초록향기에 취하여 형제봉에 다다르면 또 다른 삶의 의미를 느끼게 됩니다. 가부좌를 틀고 세상을 바라보면 산다는 게 별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뿐 만이 아닙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소나무를 보면 산다는 거 그거 정말 옹골차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바위로 이루어진 형제봉엔 아주 잘생긴 소나무 몇 그루가 살고 있지요. 그리 크진 않지만 두 갈래 세 갈래로 솟은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바위틈에서 온갖 풍파를 이겨내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마련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를 형제봉을 지키며 살아가는 소나무들이 너무도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산에 드는 일은 건강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산에 들어 한그루의 나무가 되고 돌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어 세상사로 찌든 삶의 더께를 씻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가끔씩 색안경을 쓰거나 이어폰을 꼽고 산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지요. 색안경을 쓰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어폰을 꼽고서는 새소리나 물소리, 바람소리와 같은 싱그러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때로 떼를 지어 큰 소리로 떠들거나 노래까지 부르는 무리들을 보면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증오마저 느끼게 됩니다.
산이 산다우려면 산에 드는 사람들의 몸짓과 마음가짐이 정갈해야만 합니다. 산에 드는 일은 경건하고 낮은 몸짓이어야 하는 법이지요. 형제봉의 소나무를 보며 무엇이 잘사는 일이고 무엇이 잘 못사는 일인지를 깨달아야만 합니다. 말은 없지만 형제봉의 소나무는 우리네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를 잘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 광교산 형제봉에 사는 소나무를 만나보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삶의 의욕을 되찾는 일이자 이 봄날에 걸 맞는 초록빛 꿈과 희망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