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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이야기*^*

홍승표 2012. 5. 30. 14:36

 

낙안읍성 이야기

우리나라처럼 이 많은 나라도 없습니다. 역사 이래 수많은 外侵을 받았고 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성을 쌓았기 때문일 겁니다. 순천엔 세계적인 습지가 있습니다. 세계 5대 습지로 손꼽히는 순천만이 바로 그것이지요. 순천시가 생태수도를 표방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순천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순천엔 또 다른 명소가 있습니다. 그 곳이 바로 樂安邑城이지요. 낙안읍성은 삼면에 金錢山과 오봉산, 제석산이 있고 남쪽으로 너른 들이 있습니다. 이 들은 바로 남해바다와 이어져 있어 풍수를 아는 사람들은 이곳을 명당으로 손꼽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지정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말이지요.

 

흔히 은 산자락을 끼고 있는 것이 상식입니다.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낙안읍성은 너른 들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변 환경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입니다. 북쪽의 금전산을 쇠산 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이 산에서 쇠가 생산되었기 때문이라지요. 쇠는 농기구는 물론 무기를 생산하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또한 남쪽의 너른 들과 바다에서는 풍부한 곡식과 해산물까지 생산되었으니 낙안 지역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갖춘 풍요로운 고장이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연유로 다른 곳의 과는 다르게 들판에 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풍부했기 때문에 즐겁고 安樂하다는 뜻의 낙안으로 불리게 된 것이지요.

 

낙안읍성에는 많은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하더군요. 돌과 쌀과 소리라고 합니다. 돌은 아마도 쇠를 말하는 듯합니다. 너른 들이 있으니 쌀이 많이 나오고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까지 모든 게 풍요롭고 아름다운 고장이니 저절로 노래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그리고 이런 풍요로운 삶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을 쌓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낙안 옛 부터 술을 많이 빚어 마셨다고 하는데 쌀이 넉넉했기 때문이라지요. 그런데 술을 마시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자는 것이 마을 전통이라고 합니다. 평소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낙안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잘 말해주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자기 안전은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전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낙안읍성에는 관광객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민속마을과는 달리 80여 가구에 23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은 이곳에서 아이도 키우고 논밭에 곡식을 심고 가꾸며 옛날 방식으로 아궁이에 나무를 태워 밥을 지어 먹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마을 입구 장터에서 팔고 있더군요. 마치 60년대 우리네 시골 마을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다른 민속마을과는 달리 사람냄새가 나더군요. 낙안읍성엔 매년 200만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든다고 합니다. 성내에 있는 민박집은 인기가 상종가라고 하더군요. 힘겹고 고단했던 옛 추억을 떠 올리는 데는 초가집 민박만한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낙안읍성의 성은 높이 3~4m이고 둘레가 1.4정도 된다고 합니다. 城郭을 따라 오르니 온 마을이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초가집 안마당이 보이고 봉긋한 초가지붕이 올망졸망 늘어서 있더군요. 마치 순천만의 원형 갈대밭 가운데를 살짝 들어 올린 듯 아름답고 정겹게 늘어선 초가지붕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습니다. 집의 마당을 감싸고 있는 것은 돌이나 흙담장이 많더군요, 까치발을 세우고 들여다보면 집 안마당도 보입니다. 여느 시골집처럼 빨래를 하거나 부엌을 드나드는 사람을 볼 수 있더군요. 나무로 된 마루와 창호지를 바른 문짝도 친근하게 보였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이 살고 멀리서 찾아와 구경을 하는 낙안읍성 마을을 보며 마치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 착각에 빠져들었었지요.

 

낙안읍성 곳곳엔 봄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물레방아가 재잘거리며 돌아가고 작은 연못엔 연꽃이 얼굴을 붉힌 채 수줍게 웃고 있더군요. 이름 모를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고 높지 않은 대숲의 群舞가 싱그러운 바람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낙안읍성에서는 50여 수문군이 참여해 재현해 보이는 수문장 교대식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농촌마을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한 짚을 이용해 새끼를 꼬고 가마도 엮는 추억을 만들 수도 있다더군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낙안서당에서 붓글씨를 쓰고 천연 염색으로 옷감에 물을 들이는 일도 해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가야금 병창 공연을 보거나 목소리 높여 판소리도 체험할 수가 있다지요. 오랜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함께 할 수 있는 천혜의 민속마을인 셈입니다.

 

낙안읍성은 마을전체가 史蹟으로 지정된 문화유산입니다. 조선시대의 東軒, 客舍, 草家집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많은 유, 무형의 문화유산이 있고 더구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문화 유산이기때문이지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지방계획도시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낙안읍성에 대한 순천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더군요. 지금 순천 사람들은 낙안읍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해 잠정목록 등재를 신청하고 낙안읍성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데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새로 쓰기 시작한 또 하나의 커다란 역사가 시작된 것이지요. 그 열정이 세계인들의 가슴을 불사르고도 남을 것입니다. 낙안읍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우뚝 서고 지구촌 가족 모두에게 사랑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