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령엘 다녀왔습니다. 새해를 맞아 직원 단합을 위한 산행이었지요. 선자령은 우리나라에서 설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산입니다. 정상이 1,157m로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경사도가 완만해 누구나 쉽게 오를 수가 있지요. 쉬우면서도 겨울산행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푸른 하늘과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설경은 그야말로 환상이지요. 바람은 조금 거셉니다. 바람을 뚫고 純白의 눈을 밟으며 가는 발걸음이 더없이 깔끔하고 상쾌했습니다.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인 삼봉 정도전 선생은 선자령에 올라 “하늘이 낮아 재(嶺) 위는 겨우 석 자의 높이로구나”라고 노래했다지요. 그만큼 손을 내밀면 하늘과 맞닿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대관령휴게소가 해발800m가 넘는다니 선자령 정상까지 불과 300여m 밖에 안 된다고 하더군요. 왕초보 등산객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굳이 산이라는 이름을 두고 嶺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 때문이겠지요. 2시간 정도 지나 정상에 올랐습니다.
선자령은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간 데서 유래했다지요. 아름다운 겨울 산행지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변화무쌍한 날씨로 惡名이 높은 산이라고도 합니다. 고도는 높지만 산행이 800m가 넘는 곳부터 시작되고 경사가 완만해 겨울 눈꽃을 보려고 인파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다지요. 산행이라기보다는 트래킹 코스로 제격이라는 말입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상고대가 핀 나무들과 풍력발전기들이 그림처럼 서 있지요.
선자령 정상에는 “백두대간 선자령” 이라는 글이 새겨진 표지석이 우뚝 서 있더군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습니다. 웬만한 시골장터보다 사람들이 많더군요.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겨우 인증 샷을 남길 수가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순백의 설경을 보며 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를 한눈에 알 수가 있었지요. 알몸으로 누워 있는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뛰어내리면 포근히 안아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지요. 흰 눈 세상에 정신이 홀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선자령과 겹치는 대관령(大關嶺)이란 이름은 12세기 고려 시인 김극기가 ‘대관(大關)’이라 처음 불렀다고 하지요. 대관령은 큰 고개이고 험한 요새의 관문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큰 고개와 험한 요새는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고갯길인 동시에 백두대간의 동서를 가르는 길목이라는 말이지요. 대관령은 사연이 많은 고갯길입니다. 강원도 관찰사로 일하던 송강 선생이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 <관동별곡>을 남기셨다지요. 율곡 선생이나 과거급제의 꿈을 안은 선비들이 한양을 오가던 길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바람이 지나가는 이곳엔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풍력발전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으로 강릉시민이 쓰는 전기 수요량의 절반을 충당하고 있다더군요. 풍차 곁에 서면 거대한 고목나무가 연상되고 바람개비 돌아가는 소리가 저 멀리 동해바다에 파도를 일으키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는 산자령도 때론 세찬 바람이 눈과 함께 무섭게 날아들어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놓지요. 만만하게 보면 죽기도하고 큰코다친다는 말입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남쪽으로 발왕산, 서쪽으로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북쪽으로 황병산이 한 눈에 들어오더군요. 한쪽으로는 강릉과 동해바다가 보이고 한쪽으로는 대관령목장의 경관이 이국적인 풍경으로 안겨왔습니다. 눈길을 걸으며 내려오는 길이 너무도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눈꽃도 아름답고 보이는 순백의 자연은 世波에 시달린 버거운 삶의 더께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 했지요. 싱그럽고 상큼한 마음으로 돌아서는 발길을 산자령 산자락이 오래도록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선자령을 함께 한 것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는 시간이었다는 말이지요. 산행을 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어색하고 서먹서먹했던 間隙을 좁히는 시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무실에서 갖지 못했던 또 다른 의미의 결속을 다지는 시간이었지요. 요즘 세상의 話頭는 소통과 화합이 대세입니다. 그런데 그게 어려운 일이지요. 이번 산행을 통해 모두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내일을 위해 거듭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