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足常樂
우즈베키스탄엘 다녀왔습니다. 지난 91년 구 러시아로부터 독립된 나라이지요. 남북한을 합한 면적의 2배 정도의 국토에 2,840만이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농토가 넓어 발전 가능성이 높은 곳이지요. 한국산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상품에 대한 평가가 좋고 한류 열풍이 확산 되는 등 우리나라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높다고 합니다. 특히 이 나라 청소년층에서는 “Korean Dream”열기가 날로 높아지는 등 우리나라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인기가 대단하다더군요.
3월 21일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나브루즈(Navro’z)로 불리는 명절이었습니다. 이날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인데 새로운 한해의 시작으로 생각하고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차는 봄의 시작을 축하하는 명절이라는 것이지요. 만물이 소생하는 것을 기뻐하며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서 전통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겁니다. 그리고 산이나 들판, 마을 광장에 모여서 전통 놀이를 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지낸다지요. 소원을 빌기도 하고 전통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가니예브 페르가나 주지사와 선물을 교환하는 모습)
이 날은 우즈베키스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전체의 명절이라지요.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州는 2008년 용인시와 자매결연을 체결했고 이번에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축제는 대단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음식을 나눠먹고 공연을 보며 춤을 추더군요. 주지사도 공연이 끝날 때까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올리며 주민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어른은 물론 어린 아이들까지 뛰쳐나와 온몸으로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더군요.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떠나오기 직전 타슈켄트에 있는 세종한글학교를 찾았습니다. 지난 91년에 설립된 이 학교 허선행 교장은 49살 젊은 분이시더군요. 27살 되던 해 고려인이 많이 사는 우즈베키스탄에 서 한글을 가르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고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지난해까지 4천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한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한글학교라더군요. 지금도 3백 넘는 학생들이 1년 6개월 과정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고려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15%정도가 현지인일 정도로 학교 지명도가 높다더군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라칸트에 있는 유명한 장군을 모신 사원)
우리나라와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현상으로 한국은 물론 우즈베키스탄 교육부로부터 한국어 교육기관으로 정식인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1개 교실로 출발한 이 학교는 지금 5개 교실과 도서관을 갖추고 있지요. 그러나 학교 재정이 어려워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과 일부 독지가의 도움으로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더군요. 특히 경기도에서 2층 규모의 도서관을 지어줘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돈도 쓰이는 용도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지요.
사람이 가진 게 많다고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닌듯합니다. 비록 가진 게 적어도 큰 욕심 없이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즐겁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이지요. 100개가 넘는 다민족이 모여 살면서도 큰 갈등 없이 지내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하면서도 호남이니 영남이니 하면서 지역 간 갈등을 빚는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지요. 그들이 비록 가진 게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 보다 행복지수가 높은 건 사회적 갈등이 없고 욕심 없는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살기 때문일 겁니다.
(축제장에 들렀다가 끌려나가 어기적거리며 어설프고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는 모습)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땅에 누워 있어도 편안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극락세계에 있어도 불만스럽다는 말이 있지요.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밝은 표정으로 삶을 즐기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들이 지금이라도 풍부한 지하자원을 채굴해 수출하면 소득수준이 크게 높아질 테지요. 그러나 그들은 원자재 수출은 엄격히 제한하고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외국자본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하자원도 후손들을 위해 채굴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처럼 서두르지 않고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현명함이 돋보였습니다.
세종한글학교를 이끌어가고 있는 허선행 교장선생님도 대단한 분이더군요. 20년 넘는 세월을 오직 한글을 가르치는 일에 청춘을 바친 분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이제는 훌륭한 규모의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해병대출신의 불굴의 사나이란 말이지요. 이젠 우리나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지원하고 직원이 상주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젠 우즈베키스탄의 고위층 자녀들도 이 학교를 입학해 한글을 배우고 우리나라에 유학 오는 게 꿈이라고 하더군요. 그의 한글에 대한 열정과 치열한 삶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음식 만드는 것을 돕다가 국영TV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하는 모습)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현실에 만족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 이웃과 다툼 없이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진정한 知足常樂이 무언지를 배운 것이지요. 또한 우리나라에서 편히 살 수 있는데도 이국땅에서 우리 한글을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허선행 교장에게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갈등과 반목 없이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고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새삼 곱씹어 볼 수 있었다는 말이지요. 가진 게 비록 넉넉지는 않아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게 행복한 삶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