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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이질*^*

홍승표 2013. 7. 24. 11:38

 

 

다듬이가 있었습니다. 돌로 만들어진 다듬이위에 옷감을 접어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들겨 다듬는 도구였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려웠던 시절을 살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말 못할 심정을 달래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다듬이질 할 때 그 내려치는 소리의 강약이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는 말이지요. 사람들은 다듬이질 소리를 들으며 다듬이질 하는 아낙네들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듬이질 소리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애환을 녹이는 소리였습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케케묵은 가부장과 남존여비라는 관습에 억눌리고 시어머니 시누이 시집 식구에게 억눌려 살아야만 했습니다. 말도 못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던 것이지요. 그 울분을 분출하지 못하고 원한으로 맺히기 전에 분출시킬 수 있는 것이 다듬이질이었습니다. 다듬이질 소리가 깊은 밤일수록 요란했던 것은 그만큼 맺힌 사연이 구구절절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듬이 소리는 요란하지만 가만히 귀 기울여 들으면 무언가 애원하고 하소연 하듯 들렸는지도 모릅니다. 때로 달빛을 타고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는 제법 운치가 있는 가락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앉아 양 손에 방망이를 들고 박자를 맞추어 두드리는 그 소리는 정말 절묘하고 신나는 가락이었지요. 어느 한쪽이 자칫 방심하면 박자는 깨지고 네 개의 방망이가 섞어 치다 보면 방망이끼리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다듬이질은 마음이 하나 되지 않으면 속도와 박자를 맞출 수가 없지요. 피도 물도 섞이지 않은 두 여인이 한 집안에 시집 와서 어머니가 되고 며느리가 된 것은 운명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을 짊어지고 살다보니 고운 정 미운 정이 가슴에 쌓여 恨으로 뭉쳐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방망이를 움켜잡고 응어리진 恨을 깨부수기라도 하듯 어금니를 질끈 물고 내리치면서 알 수 없는 서러움에 가슴속으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고기 리 산자락에서 신선처럼 사는 분을 만났습니다. 몸이 아파 요양 겸 산자락에 집을 짓고 표고버섯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분이지요. 수많은 항아리들이 놓여 있고 작은 연못엔 비단 잉어들이 유유히 떠 놀고 있었습니다. 연못 옆에 제법 큰 석탑이 보이더군요. 다듬이 400개를 모아 만든 탑이라고 합니다. 요즘엔 찾아보기 어려운 다듬이를 400개나 모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0년은 족히 걸렸다고 합니다. 탑을 이룬 다듬이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로 아우성치고 있었습니다.

 

애틋한 사연이 담긴 한 生의 응어리들을 거칠 것 하나도 없이 한 자락 소리로 풀어 큰 山을 흔들어 놓고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밀어 치고 당겨 치고 맺어 놓고 풀어 놓고 어둠을 빛으로 풀고 미움을 사랑으로 풀고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처 없이 떠돌았습니다. 400개의 다듬이질 소리가 다시 또 휘돌아 쳤습니다. 그 몸짓 그 소리들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꿈이나 사랑 깨워 놓고 돌아올 기약도 없이 다시 먼 길을 떠나갔습니다.

 

그 소리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귓전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유년시절, 고단한 몸을 이끌고 산자락 참외 밭 원두막에 올라 현란하게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며 별을 헤던 밤, 때로 멀리서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오곤 했지요. 그 아련하게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에 눈을 감으면 희미하게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달빛을 타고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는 눈을 감으면 더욱 크게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곤 했지요.

 

겨울밤이면 화롯가에 둘러앉아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다듬이질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저희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으셨지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다듬이질로 지치셨다는 걸 눈치 챌 수가 있었지요. 잠시 쉬면서 함께 군고구마를 드시던 어머니는 가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이 때로 꿈결 같이 느껴지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스르르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 시절엔 달빛 교교한 마루에 앉아 다듬이질을 하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 신비롭게 보였습니다. 때로 방망이소리가 커지면 무언가 못마땅하거나 화나는 일이 생겼구나하는 짐작을 해보곤 했지요. 다듬이질로 다져진 옷감은 우리 가족의 옷이 되어 입혀졌습니다. 어머니의 손길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그 따스한 사랑이 있어 가난을 이겨낼 수 있었지요. 이젠 다듬이질 소리가 유년의 기억 속에 남겨진 추억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오늘문득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가 새삼 그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