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길은 많습니다. 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이기도 하지요. 새로운 길은 늘 알지 못할 설레 임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봄을 시새움하는 바람결이 제법 매섭게 몰아치는 날 평화 누리 길을 걸었습니다. 평화누리 길은 경기관광공사가 김포, 연천, 고양, 파주 등 4개 시군과 협업을 통해 조성한 둘레 길로 12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고 길이가 191km에 달하지요.
평화 누리 길의 시점인 1코스는 김포 대명 항에서 시작됩니다. 입구 왼편에는 거대한 함정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수도권에서 유일한 함상공원이지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 상륙작전에 참여했던 함정으로 월남파병에도 참가했었다고 합니다. 길 왼편으로는 철책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지요. 철책 너머로 염하(鹽河) 강과 강화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염하 강은 말이 강이지 소금물이 흐르는 바다입니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었지요. 간첩의 침투를 막기 위해 철책을 설치하고 해병대가 초병을 세우고 순찰을 했던 곳입니다. 그러던 것이 최근 軍이 빗장을 열어 60년 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그대로 보존된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이 더없이 상큼하고 싱그러웠습니다. 지난날 외침을 막기위해 쌓은 토성인 덕포진이 있고 몽골의 침략을 피하던 고종의 강화도 피난을 도운 손돌(孫乭) 공의 묘역도 있지요.
묘한 긴장감 속에서도 유유히 흐르는 염하 강과 강화도, 산과 들의 정경은 더없이 평화롭고 아늑했습니다. 가끔 고기잡이 배들이 작은 섬처럼 떠다니고 강 자락 갯벌에는 먹이를 쪼는 청둥오리와 기러기 같은 철새들의 몸짓이 한 폭의 그림이더군요. 평화누리 길에 묻힌 2시간은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찬 바람결도 어느새 봄내 음 가득한 훈풍으로 느껴졌습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넉넉해졌기 때문이지요. 상큼한 바람결에 맑아진 가슴으로 따사로운 온기가 더해져 아무런 걱정 없는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평화 누리 길에 들어서면 어느새 모든 벽이 허물어집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녹슨 철조망이 너머 바라보이는 아늑한 풍경들이 나도 모르게 경계의 벽을 넘게 하지요. 이곳엔 반목과 갈등이 없습니다. 분노와 미움조차도 사라지지요. 오랜 세월 전쟁의 상흔을 딛고 싹을 틔운 나무와 풀들이 이제는 제법 어우러져 평온한 모습으로 결 고운 햇살과 바람을 안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화 누리 길은 말 그대로 평화의 메신저입니다. 온 누리에 평화의 메아리를 전하는 사랑의 전령이라는 말이지요.
눈을 홀기며 손짓하는 새 봄날, 가벼운 마음으로 평화 누리 길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