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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홍승표 2015. 6. 8. 17:32

                                                                                                                                                                                                                                                                                         

갑 질 (2015, 6, 4일자 중부일보 시론)

 

세상이 갑 질 논란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갑 질은 우월한 지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적절한 행태를 일컫는 말이지요. 미국 순방중인 대통령을 수행한 청와대 대변인이 현지 인턴 사원에게 갑 질을 해 나라망신을 시키고 국민적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킨 일이 그것입니다. 대기업 임원이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승무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한 라면상무 사건, 회장의 딸인 모 항공사 부사장이 승무원의 서빙 방식을 문제 삼아 비행기를 회항시킨 땅콩회항 사건. 백화점 주차요원으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자동차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라고 하자 무릎 꿇리고 폭언을 한 백화점 모녀 사건 등이 대표적인 갑 질로 손꼽히고 있지요.

 

 

지난달엔 평택의 미군부대 공사에 참여했던 하청업체의 대표가 원청업체의 갑 질에 견디다 못해 분신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그는 “갑의 횡포가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철저히 수사해 ...찾아 달라‘는 유서를 남겼다고 하지요. 직업 군인은 장군 되는 게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합니다. 그 하늘같은 별을 네 개나 단 어느 공군 대장의 부적절한 처신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용퇴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별단 어깨가 무거워서인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과연 제대로 령(令)이 설지 걱정이라는 소리가 들리고 있지요. 국회의장을 지내신 어느 분도 골프장 캐디에게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세상에 완장 찬 사람치고 거들먹거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축사를 시키지 않는다거나 좌석배열이 잘못됐다고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치며 행사장을 떠나는 완장을 수없이 보았지요. 명백한 갑 질이고 천박한 짓입니다. 완장은 사회공익과 질서를 위해 주어지는 상징물인데 사람들이 받들어 모시고 예우해주니 안하무인격으로 갑 질을 일삼는 것이지요.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 상황실 사진을 보고 세계인들은 이것이 미국의 힘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공군 준장이 중앙에 앉아 설명하고 오마바 대통령은 한 모퉁이에 앉아 있고 힐러리 클린턴 등 다른 장관들은 서서 경청하는 사진이었지요. 우리로선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국민이 위임해준 완장을 차고 일하는 공직자가 오히려 갑 질을 해서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습니다. 완장을 찬 공인이나 돈 많은 사람들만 갑 질하는 게 아닙니다. 어느 아파트 주민은 경비원 아저씨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폭행을 하고 임대 주민은 질이 좋지 않다며 공용 도로를 막은 일도 있습니다. 식당엘 가면 종업원에게 무조건 반말을 하며 갑 질하는 행태를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이른바 소비자 갑 질이지요. ‘고객의 권리’를 앞세워 점원들에게 거드름 피며 꼬투리를 잡고 함부로 인격적 모멸감을 주면서 사장 나오라고 큰 소리로 호통 치는 추태가 비일비재합니다. 꼴 갑 떠는 일이고 몰상식한 행태지요.

‘손님은 왕’이란 생각만으로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갑 질을 일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돈을 쓰는 사람이니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갑 질은 열등감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있지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갑 질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커피 점에선 반말로 주문하는 손님에겐 요금을 더 받고 존대 말을 하는 손님에겐 요금을 할인해줘 화제가 되고 있지요. 콜센터에서는 폭언하는 고객의 전화는 먼저 끊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세하나마 갑을 관계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듯합니다. 돈이 많다고 품격이 높아지는 건 아니지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양보하고 베풀고 배려하는 몸짓이 뒤따라야 품격을 논할 수 있습니다. 세계 13위권의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접을 받지 못하는 건 이러한 이유이지요. 우리사회에서 갑 질이라는 말이 사라질 때 비로소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