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 공직자를 만났습니다. 올해 초 서기관으로 승진해 일해 온 그가 정년을 5년이나 남기고 용퇴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지요. “무슨 일 있어? ” “무슨 일은요. 36년 공직생활 했으면 이제 좀 쉴 때도 되었지요.” “구청장이라도 한번 하고 명퇴해도 충분하잖아” “아닙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른 게 우리 후배들 덕분인데 이제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상도지요.” “이제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가 용퇴를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욕심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이지요. 그런데도 후배들을 위해 욕심을 내려놓은 그의 몸짓이 새삼 존경스러웠습니다.
해마다 상, 하반기엔 공직자들의 명예퇴직 문제가 공직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곤 합니다. 공직자로써 정년퇴직은 희망사항이 된지 오래되었지요. 정년을 1~2년 남기고 후배들을 위해 명퇴하는 게 관례가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말이 명퇴지 반강제 퇴직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런 관례를 무시하고 명퇴하지 않는 공직자도 있습니다. 그들도 선배들이 명퇴를 하고 승진 길을 터준 덕에 승진을 한 것인데 물러나지 않겠다는 건 염치없는 일이지요. 그렇다고 선배들이 명퇴하지 않는다고 후배들이 험한 말로 인터넷을 도배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들도 세월이 지나면 명퇴 대상자가 되기 때문이지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공무원도 상품입니다. 사람들은 누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그 사람의 됨됨이나 가치수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요. 어떤 직원은 여러 부서에서 추천이 되지만 전혀 추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특정인을 다른 곳으로 방출해달라는 사례도 있습니다.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분명 본인 스스로 해결해야할 문제인 것입니다.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이고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지요. 공무원도 상품입니다. 공공(公共)의 상품이라는 말이지요. 가끔 위임받은 권한이 마치 자신이 가진 특권인양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는 못난 공직자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훌륭한 공직자들이 많이 있지요. 말년에 수원부시장으로 일했던 분이 있습니다. 사모님도 경정까지 지낸 경찰간부였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었지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두 분은 자식이 없는 것도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이웃사랑을 실천했다고 합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시작한 것이지요. 30년 세월 동안 도움을 받은 학생이 50명도 넘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도청에서 국장으로 일하시던 또 한분은 지금도 사기업에 몸담아 일하시면서 열심히 봉사하며 지내고 계십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 그분은 천주교 기념관을 짓는 모임의 회장으로 열정을 쏟고 있지요.
오랫동안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지요. 그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퇴직 후 봉사는 또 다른 좋은 삶의 본보기가 아닐까 합니다. 오랜 공직을 통해 어느 정도 꿈을 이뤘으면 다른 사람들의 꿈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넘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꿈 넘어 꿈을 실현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는 말이지요. 명예퇴직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씨앗을 심고 싹틔워서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인생2막의 힘찬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