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고생만 하시고. 6남매를 키운 버거운 삶, 그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돌아가신 분들이지요. 우리 6남매는 제법 공부를 잘했는데 다른 사람에겐 자랑거리일 수 있는 이것이 부모님에겐 걱정거리였습니다. 잘사는 집도 몇몇 중학교정도만 보내는 것을 당연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공부 잘하는 자식들 때문에 남보다 더 고생을 하셨던 것이지요. 어느 날 우연히 들은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차라리 공부를 못하면 농사를 시킬 텐데, 잘하니까 못하게 할 수도 없고, 대학은 못 보내도 고등학교는 보내야지….” 그 순간 울컥했지요. 부모님에겐 자식들이 공부 잘하는 게 마냥 좋은 것이 아 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학교에 가는 형제자매가 늘어날수록 학비를 마련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요. 차라리 공부를 못하는 게 효도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괜찮게 하니 부모님으로서는 더욱 어려운 삶을 사실 수밖에 없었지요.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마음 놓고 술 한 잔 넉넉하게 사드시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훗날 형과 나와 둘째 여동생 셋이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형편이 나아져 남동생 둘을 대학에 보내기로 하고, 각각 인천과 수원에 있는 고등학교에 보냈지요. 말단 공무원인 나는 어머니와 함께 동생의 반찬거리 등을 가지고 인천 주안 역을 오가곤 했습니다. 이곳에 방을 얻어주고 큰 여동생이 밥을 해주며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삼거리에서 오가는 공무원을 만나면 술을 사주곤 하셨지요. 자식 셋이 공무원으로 일하니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인사하는 공무원을 붙잡고 으레 술을 권하셨는데, 군청 공무원치고 아버지 술잔을 안 받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예순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팔자가 피려고 하니 돌아가셨다고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고, 졸지에 홀로 되신 어머니는 망연자실 오랫동안 힘겨운 세월을 보내셨지요. 말년에는 당뇨에 치매 증세마저 보이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할 때만 해도 돌아가시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는데 3개월 만에 돌아가셨지요. 황망함 속에 아버지 곁에 모시고 돌아서는 뒷전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남긴 자산은 비록 적었지만 정신적인 유산은 더없이 크고 소중한 것이었지요.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이웃과 더없이 사이좋게 지내셨고 어머니와도 특별히 다투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도 오직 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인 참으로 고마운 분이지요. 가진 것은 없었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넉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때 우리 시골 동네의 다른 부모처럼 고생을 덜 하시려고 6남매를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면, 우리 형제자매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자신을 돌보지 않고 우리와 이웃을 위해 보여준 부모님의 헌신적인 삶의 발자취는 죽을 때까지 큰 교훈과 사랑으로 마음속에 살아 숨 쉴 것입니다.
지금 부모님은 세상사 모두 잊고, 그동안 못다 한 사연을 엮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내고 계실 테지요. 하늘나라에는 이승과 달리 걱정이나 근심 같은 건 없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달이 유난히도 밝고 그 빛이 더없이 그윽한 날 그 달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부모님의 얼굴이 함께 겹쳐 보여 아린 마음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다 먹먹한 마음으로 돌아서곤 하지요. 부모님이 아무 걱정 없이 하늘나라에서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정성을 다해 살아가신 부모님을 존경하고 기억하며 살아왔지요.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도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닮고 싶은 부모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의 달 5월의 첫날을 닮고 싶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시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