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이 간단치 않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기도 합니다. 저는 틈이 나면 철학 강의를 듣고 있지요. 삶에 대한 화두를 풀어보자는 생각도 있지만 강좌를 진행하는 철학박사 한 분의 이야기에 매료돼서입니다. 이분은 5년 전부터 매주 한 차례씩 시민을 위해 '태장마루도서관'에서 무료로 철학을 강의합니다. 듣다 보면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박식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곤 합니다.
강의도 강의지만, 그의 삶에서 배울 게 많습니다. 이분이 일곱 살 때,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4남매를 남겨두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장면 배달을 시작으로 자동차정비소, 전파사, 주유소 등에서 20여 가지 일을 했지요. 그렇게 살면서도 학이시습(學而時習). "사람은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어두운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철학을 전공해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정치, 사회복지 분야 등의 다른 공부도 했는데 2개의 박사 학위, 3개의 석사 학위를 받았지요. 20여 종의 자격증은 치열한 삶의 부산물입니다. 이분을 보면서 저는 제가 했던 말을 한 번씩 떠올려 보곤 합니다.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속을 비운 데다 중간중간 생겨난 매듭이 지탱해주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큰 어려움 없이 지내다가 처음 어려운 고비를 맞은 것인데, 튼튼한 매듭이 하나 새로 생겼다고 생각하면 앞으로의 행보에 좋은 보약이 되지 않겠습니까." 공직에서 물러나 쉬고 있다가 우연히 다시 공직에 몸담은 일이 있었지요. 그때 모시던 분이 난관에 부딪힌 적이 있었을 때 조심스럽게 드렸던 말씀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돌발변수가 생겨날 때가 있습니다.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봄 골목길을 걷는데, 담장을 돌면서 갑자기 휘몰아쳐 오는 회오리를 맞는 것처럼 마른하늘 날벼락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 당황스럽고 황당한 일 앞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합니다. 이를 이겨내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으로 겪을지 모를 더 큰 사건 앞에서 그 사건은 하잘것없는 사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지나고 나면 추억일 수 있는 일로 여기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고비를 극복하는 건 오롯이 자신만의 몫입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내려놓는다는 것도 쉽지 않지요. 시간이 필요하고 고생이 뒤따르지만, 매듭이 있어야 내공도 깊어지고 사는 맛도 있습니다. 살면서 길을 가다가 넘어져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지요. 넘어질 수는 있지만, 엎어져 있지는 말아야 합니다. 넘어져 봐야 다시 일어서는 방법도 터득하는 것 아니겠는지요.
그렇습니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해야 합니다. 사고는 냉정하게, 행동은 치열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듭만이 대나무의 궁극은 아니지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별것 아니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무척 큰일로 느껴질 때가 있듯 내가 볼 때는 별것 아니어도 다른 이에겐 무척 큰일일 수 있습니다. 내가 큰일 앞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그리워했듯 그의 큰일에 내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대나무가 매듭을 맺는 것은 자신을 튼실하게 하는 데만 있지는 않지요. 키 큰 숲이 되어 따뜻한 울타리가 돼주고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워주는 데에도 있습니다. 인생의 매듭이 그러하지요. 매듭 있는 사람이 나에겐 냉정하지만 다른 이에겐 관대하고 따뜻하게 배려할 줄 압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 사회를 넉넉하고 살만하게 해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요.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의 상도(常道)이고 순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