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장님! 이번에 도청에 가지 말고 여기에서 1년만 더 일하시죠!” “아닙니다. 조선시대는 아니지만 모시던 시장과 경쟁했던 분과 일한다는 게 모양새도 그렇고 직원들도 떨떠름하게 생각할 겁니다.” 파주부시장으로 일할 때입니다. 당시 1년간 모시고 일하던 한나라당 류 화선 시장이 3선에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민주당 이 인재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이 되었지요. 선거기간 동안에는 시장 직무대행으로 일했는데 참 곤혹스러웠습니다. 공무원은 중립이지만 현직시장이 출마한데다 상대 후보도 제가 경기도 문화정책과장으로 일할 때 직속상관인 문화 관광국장이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현직시장으로 모셨다고 경거망동하지마라!’, ‘도청에서 국장으로 모신 걸로 아는데 오해받을 짓 하지마라!’는 경고성 전화를 받고는 씁쓸했습니다.
선거기간 중이라 행사가 많이 줄었지만 공식적이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참석치 않았고 참석해도 행사가 끝나면 곧바로 되돌아오곤 했지요. 그런데 현직 시장이 낙선하고 시장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젠 별 수 없이 도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당선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만났던 것이지요. “부시장님! 제가 공직을 떠난 지 7년이 넘어 감이 떨어져 그러니 도와주세요.”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 요청하는 바람에 ‘며칠 말미를 달라’고 했습니다. 취임을 열흘 남짓 앞두고 다시 만났는데 가장 친하게 지내는 건설국장, 비서실장이 함께 있었지요. “김영구 국장님! 이 종춘 실장님! 홍 부시장님과 제가 함께 더 일하려고 하는데 어떠세요?” “저희는 좋지요. 최곱니다.” 사전에 거절하지 못하도록 각본을 짠 것입니다.
“홍 부시장은 이번에 도청으로 가시는 거죠?” 류 시장이 물었을 때,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 이유지요. “글쎄요. 들어가야 되는데 마땅한 국장자리가 없어서 고민입니다.” 통상적으로 선거를 통해 시장, 군수가 바뀌고 특별한 요청이 없으면 부(副)단체장은 바뀌는 게 관례였지요. “그러면 파주에 더 계세요. 일을 잘하니 모두들 좋아할 겁니다.” 의외였고 고마웠습니다. 당선인이 취임 전, 인사에 관한 조언을 했지요. 취임 후, 당연히 바꿀 것으로 예상했던 전임 시장의 비서실장은 물론 총무, 회계과장 등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조직안정과 화합을 위한 일이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서 모두들 놀라워했지요. 인사태풍이 불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杞憂)였습니다. 직원들이 별다른 동요 없이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취임 후, 처음열린 8월 월례조회 날이었습니다. 시상과 초청 강연 후, 마무리 인사말을 하던 시장이 저를 일으켜 세워 뒤를 돌아보게 하더니 한마디 날렸지요. “직원 여러분! 시장이 바뀌었는데 부시장이 그대로 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홍 부시장은 도청에서 함께 일했는데 능력도 인품도 좋아 도청으로 간다는 걸 제가 더 있자고 삼고초려 해 붙잡았는데 잘했죠?” “네”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얼떨결에 직원들을 향해 인사를 하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제가 찜찜하게 생각할 여지를 아예 없애 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시장은 명패도 새로 만들어주고 모든 일을 부시장과 상의하라고 힘을 실어주었지요. 1년 후, 저는 도청 자치행정국장으로 영전을 했습니다.
민선단체장이 바뀌면 곧바로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하는데 일종의 줄 세우기지요. 관선 때는 거의 없던 일입니다. 시장, 군수도 직업 공무원이었기 때문이지요. 민선 단체장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인사를 통해 내 편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물갈이를 한다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지요. 어느 조직이든 평소에 일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6개월만 함께 일해 보면 누가 일 잘하는지 보이고 그때 인사해도 늦지 않는 일이지요. 직업공무원은 사람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조직의 장과 조직을 위해 충성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단체장의 줄 세우기가 계속되면 공직사회나 지역에도 좋은 일이 아니지요. 단체장은 모든 일에 신중해야하는데 선거를 염두에 두고 일을 하면 시민만 불행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