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 과장! 나하고 미국에 가서 백남준 선생을 만납시다.” 경기도에서 문화정책과장으로 일할 때, 임 창열 지사가 뜬금없이 ‘백남준 아트센터를 경기도에 만들자’고 했습니다. 지사의 지시를 받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던 중인데 느닷없이 미국 출장을 가자는 것이었지요. 이미 백남준 아트센터 건립을 구상하고 에이전트(Agent)를 통해 접촉을 해왔는데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때마침 외자유치를 위한 미국출장 일정이 잡혔으니 가는 길에 만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지요.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나 미국도 가보고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마저 들었습니다. 부랴부랴 사전준비를 마치고 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외자유치단과 함께 출장길에 올랐지요.
생전 처음 미국엘 가는 것이니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비몽사몽 뉴욕에 도착해 서둘러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잠시 후, 부인 구보타 시게코(久保田 成子)여사와 함께 온 백남준 선생을 만났지요. 지사와 선생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의중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사는 ‘1992년 첫 번 째 전시회를 과천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가졌으니 경기도와 인연이 깊다’며 친근감을 표시했고 ‘지난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이 큰 성공을 거둔 걸 축하드린다.’고 말해 호감을 샀지요. 특히 선생은 ‘본관이 ’수원 백씨‘이니 사후(死後), 수원이나 용인에 모시겠다.’는 말을 듣고 감격해 했습니다. 이런 정성으로 선생의 많은 작품을 구입하는 계약을 맺고 백남준 아트센터를 건립할 수 있었고 경기도의 관광명소가 되었지요.
“ 이 작품의 어느 정도 가격이 나가는지요?”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대만의 고궁박물원을 돌아보던 고 이건희 회장이 박물원장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정말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지요. “이 유물은 팔수도 없고 가격 또한 정해진 게 없습니다.” “ 그래도 개략이라도 추정하는 건 있지 않나요?” 한참을 망설이던 원장이 “제주도와 맞바꾸자고 하면 모를까 누구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겁니다.”라고 답했다지요. “살 수 없다는 건 알면서도 너무 좋은 작품이라서 도대체 얼마의 가치가 있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이 회장은 헛헛한 웃음을 날리며 돌아섰다고 합니다. 고궁박물원에 갔을 때 가이드로부터 전해들은 말이지만 미술품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야사(野史)같은 이야기이지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이 국보급을 포함한 2만 3000여 점의 미술품을 정부에 기증했습니다. 이 발표가 나오자마자 벌써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 근대미술관이 없다는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미술관 내에 ‘이병철실’과 ‘이건희 실’을 별도로 마련해 삼성가의 기증의 뜻을 기리는 한편 국립근대미술관이 없는 기형적인 구조를 타개하자”는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주비위원회가 생겨났지요. 문재인 대통령도 삼성가의 미술품 기증과 관련해 “유족들이 기증한 정신을 잘 살려서 국민이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모처럼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지요.
이제 세간의 관심은 과연 어디에 미술관이 지어질까 하는 것일 겁니다. 서울시 소유 송현동 문화공원부지나 정부서울청사가 거론되고 있지요. 접근성도 좋고 상징성도 갖춘 곳이라는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유치전에 뛰어들었지요. 과천부시장으로 일할 때 가끔 국립현대미술관을 돌아보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갈 때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아쉬웠지요. 유럽을 여행하면서 루브르박물관 등에 수많은 인파가 찾아든 것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표를 의식한 정치적 접근을 떠나 천년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한 이유이지요.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수준과 품격을 보여주고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미술관의 탄생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