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은 시급을 다투는 것이라서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하이닉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팔당호에 빠져 죽을 각오를 하고 일을 추진하라"
12년 전, 경기도 수질본부장으로 일할 때, 김 문수 지사의 엄중한 지시가 내려졌지요. 당시 이천에 있는 반도체 공장 하이닉스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하기 50나노 이하의 고집적도 반도체 생산을 위해 공장증설을 추진했는데 걸림돌이 생겨났습니다. 알루미늄생산 공정을 구리공정으로 바꿔야하는데 팔당상수원 특별구역에서는 구리배출시설의 입지를 규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반도체 구리공정이 허용되어 4개 생산라인이 증설되면 1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생겨나는 천금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팔당호를 관리하는 환경부가 구리가 인체에는 해가 없지만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다른 화합물이 섞이면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전예방차원의 입장을 고수했지요.
환경부도 수도권 시민의 젖줄인 팔당의 물을 관리하는 문제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구리가 인체에 해가 없고 오히려 사람을 포함한 포유동물에게 필수불가결한 영양소라는 게 증명되어 있었고 수질환경기준이나 먹는 물 수질기준에도 구리에 대한 규제는 없었지요. 외국에서도 원천적으로 구리공정 입지를 규제하는 나라는 없었다. 또한 전문가들도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며 정부가 도입한 생태독성으로 관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의 경기도와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자신을 얻은 나는 거의 매일 과천의 환경부를 찾아 윤 승준 물 환경 정책국장과 실무자들에게 안부인사(?)를 드리기 시작했지요.
“지사님! 제발 홍 본부장 좀 그만 보네세요. 매일 찾아와서 정말 귀찮고 힘이 듭니다.” 지사가 저와 함께 당시, 이만의 환경부장관과 윤승준 국장을 만났을 때 윤 국장이 웃으며 말하자 한마디 던졌습니다. “ 팔당지역에서 사육되는 86만 마리의 돼지에서 하루 155kg의 구리가 배출되는데 하이닉스 공장이 증설돼도 하루 3kg 미만 구리만 배출된다고 하니 문제가 없습니다. 공장 증설을 허가해주면 찾아오라고 해도 안 갈 겁니다.” 구체적인 수치까지 거론하자 윤 국장은 놀라는 눈치였고 지사의 주장을 들은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리고 얼마 후, 하이닉스 구리공정문제가 전격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환경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심사숙고한 후, 우리의 미래를 내대본 현명한 판단이었지요.
SK하이닉스는 그 후,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고 용인에 448만㎡(135만평)규모, 2만5천개의 일자리가 생겨나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때 마침, 정부는 ‘K-반도체 전략 보고대회’를 열고 2030년까지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세계 최대의 반도체 공급 망, ‘K-반도체 벨트’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도체 제조부터 소재·부품과 첨단장비 등을 아우르는 반도체 제조시설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10년간 510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지요. 정부는 민간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액공제 확대·금융지원·인프라(Infra)등을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략의 핵심은 정부가 기업들과 함께 경기도를 중심으로 세계 최대·최첨단 반도체 공급 망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를 ‘K-반도체 벨트’라고 이름 붙였지요.
성남 판교와 용인 기흥~화성~평택~온양의 서쪽, 이천~청주의 동쪽이 용인에서 연결돼 ‘K자형’ 모양이기 때문이지요.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용인시로부터 산업단지 승인을 받았지만 넘어야할 산이 많다고 합니다. 2024년부터 용인 클러스터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게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지요. 주민들이 지장 물 조사를 거부하는 등 토지보상이 늦어지고 있어 토지보상 협상은 빨라도 올 10월 이후에나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용인시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지원을 위해 국장급을 단장으로 하는 전담기구를 만들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형국이지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담보하는 차원에서라도 용인 클러스터가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