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세상은 내 맘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고 누구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 이치이이지요. 결혼하고 12년 넘게 단칸 방 월세로 시작해 전세를 전전하다 방2개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고향에 내려가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가 뜬금없이 한 마디 던졌지요.
“돈은 모아놓은 게 있니?”
“아닙니다. 은행대출을 받으려고 하는데요.”
“공무원 월급으로 살기도 빠듯할 텐데...”
갑자기 머리가 허여 지더니 뒷덜미가 뻐근해졌습니다. 수학적으로 생각하니 그게 만만치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도 죽어라 아끼고 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중도금을 치를 무렵, 부족한 돈을 마련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닐 때, 시골의 부모님이 거금 1천만 원을 선뜻 보태주었지요.
그런데 정작 입주를 몇 개월 앞두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겨우 내 집을 마련했는데 예순 둘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신 것이지요. 장례를 치르고 난 후, 그 돈이 농협에서 대출을 받은 것이라는 걸 알고 울컥했습니다. 백만 원을 갚고 9백만 원이 남아 있었지요. 6남매가 논의 끝에 부의금에서 갚기로 했고 빚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 빚은 아버지가 죽어서 갚은 셈이었지요.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내가 은행 대출을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농협 대출을 받아 중도금을 보탠 것이었습니다. 박봉의 월급으로 살아가는 자식이 빚을 지고 살아야하는 게 안쓰러웠던 것이지요. 여섯 자식들을 위해 논밭까지 팔아가며 공부시켰지만, 그래도 자식이 빚을 지는 건 부모 입장에서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던 듯합니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는 노인교통비가 지급되고 있지요. 경기도청에서 노인업무를 담당하는 실무과장으로 일할 때입니다. 65세 이상 어르신이 66만 명이 넘었고 9백억 넘는 예산이 필요했는데 전체 노인복지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였지요. 문제는 소득에 관계없이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노인교통비를 지급하다보니 다른 분야에 투자할 예산이 부족했습니다. ‘모든 어르신에게 지급하는 것보다 소득수준을 고려해 지급하고 남는 예산을 다른 노인복지사업으로 전환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도의회에 사전 보고를 드렸는데 경기도 노인회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도의회도 결국 모두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요. 한 번 시작된 복지제도를 끝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것보다는 어려운 사람에게 더 많은 금액을 주는 것이 효과적이지요. 옛 어른들은 돈이 생기면 쓰기보다 저금이나 빚부터 갚았습니다. 나눠주는 걸 줄이고 나라 빚을 갚는 게 우선이 아닐는지요.
똑같이 나누자는 건 위험한 일이고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도 도입문제도 마찬가지이지요. 복지는 취약 계층이나 어려운 사람으로 최소화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일정한 금액을 주는 것은 눈감고 ‘제 닭 잡아먹고 다시 알을 부화시켜 닭으로 키워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요즘 IMF 환란 위기 때보다 힘들어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엄살이고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견뎌온 어른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 고생은 고생도 아니지요.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정부가 몇 십 만원을 공짜로 준다고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닙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공짜는 마약과 같아 늘어날수록 위험하다는 게 정설이지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를 자랑하다 쇠락해가던 영국을 살린 건 철(鐵)의 여인으로 ‘대처’수상이었습니다. 그녀는 땀 흘리지 않고 사는 건 잘못 된 것이라며 공짜의 고리를 끊어버렸지요. 왜 우리 부모들이 허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살았는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식들에게 빚은 남기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악물고 살아온 처절한 부모의 삶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나만 살겠다고 빚을 물려주는 게 맞는 일인지 곱씹어 볼 일입니다. 나라를 살리는 건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지요. 공짜가 좋다고 자식들에게 빚을 물려주는 건 어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