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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영업자의 눈물^^

홍승표 2021. 6. 22. 10:31

성욱이 아버님!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이발소를 그만두게 됐어요. 이제 다른 곳을 찾아보세요.” 머리 염색을 마치고 잠시 기다리는데 이발소 주인장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 왜요?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시나요?” “아닙니다. 저는 더 일하고 싶은데 사정이 생겨서 그만두게 되었네요.” 그 말을 듣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경기 광주 시골 촌놈이 청운의 뜻을 품고 전입시험을 거쳐 경기도청으로 발령을 받았던 때가 1982년이었지요. 그때, 도청에서 가까운 화서동 작은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재래시장도 가깝고 무엇보다 도청까지 20분정도 걸으면 출퇴근이 가능했지요. 그때부터 그 이발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이발소는 해병대출신 남편이 머리를 깎고 아내는 면도를 하는 형태로 운영되었지요. 연배도 비슷해서 몇 번 지나서는 자연스럽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습니다. 부부가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지요. 과천, 파주, 용인으로 자리를 옮겨 일할 때도 변함없이 38년이 넘도록 이 집을 찾은 이유입니다. 그 때, 두 살이던 아들도 크면서 함께 다니기 시작했지요.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 미장원으로 다닐 때까지 함께 다녔습니다. “이제 성욱이 아버님도 머리가 많이 빠지시네요.” “어이쿠! 사장님! 사돈이 남 말하십니다 그려.... ” 그 사이 그 부부도 세 명의 아이를 낳고 학교 보내고 모두 출가를 시켰으니 세월이 한참 흐른 것이지요.

 

이발소 건물 주인은 늘 조용히 부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해주었답니다. 그런데 지난해 돌아가시고 아들이 건물주가 된 후, 임대차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임대료를 올렸다는 것이지요. 가뜩이나 미용실로 손님들이 빠져나가 어려워졌는데 임대료를 올려달라니 인건비는커녕 임대료도 못 벌게 생긴 것입니다. 문을 닫기로 한 이유였던 것이지요. 그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이발소가 문을 닫고 열심히 정성으로 머리를 다듬어주었던 부부와 헤어지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오랫동안 고마웠습니다. 두 분이 따뜻한 국밥이라도 사드세요.” 염색까지 곁들인 이발료를 내고 받은 거스름돈 3만원을 건네주고 돌아서는 순간, 사장님의 붉어진 눈을 보고 저도 울컥했습니다.

 

광주광역시에서 커피 점을 하는 자영업자가 정부 경제정책을 두고 '무식·무능·무대 뽀'라고 직격탄을 날렸지요. 그는 최저임금 상승에 대해 "강남이란 구름 위에서만 사는 자들이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오손도손 사는 자영업과 서민들의 생태계를 순식간에 망가뜨려 버렸다"고 했습니다. 52시간제 시행과 관련, "가계수입이 제자리거나 오히려 줄어드니까 시장의 활력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고도 했지요. "지역경제를 살리고 중소상공인을 살리려면 김대중 경제정책을 계승해야 한다."는 그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헛발질하지 않도록 공공부문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네티즌들은 '시무 7조 조은산과 주부논객 삼호어묵을 잇는 재야 논객의 등장'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를 작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후배는 수원에서 2개의 식당을 운영하는데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고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2호점은 낮 장사만하고 있지요. 사정을 아는 직원들이 임금의 40%, 본점 직원도 30만원을 자진해 반납했고 육회비빔밥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등 사력(死力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그와 직원들의 소통과 상생노력이 인정을 받아 중소기업 사랑 나눔 재단은 그를 코로나 19 사태로 힘든 시기를 겪는 국민에게 희망을 준 코로나 영웅으로 선정해 시상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그를 응원해왔지요. 그런데 엊그제 전화를 받고 다시 먹먹해졌습니다. “ 장사가 임대료도 벌기 어려워 2호점은 문을 닫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