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장님! 저 7월말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제 1년밖에 안됐는데 왜?” “그게 그렇게 됐습니다.” 지난해 도청에서 일하다 명예퇴직을 하고 공기업 본부장으로 일하던 후배와 모처럼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지난 6월 말 명예 퇴직한 또 다른 후배를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한 것이지요. 한 달 전쯤 도청 후배국장의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선배님! 잘 계시죠? 거긴 일하기가 어때요?” 뜬금없이 훅 들어온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지요. “그렇지 뭐, 도청보다는 편해...” 그 후배는 연말에 명퇴대상이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그리 말하곤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인사처장이 오후에 잠깐 보자고 했다지요. 순간 번개처럼 떠오르는 게 있었는데 그게 그 후배의 전화였다는 겁니다. 지난해 처음 계약을 할 때, 보통은 2년 계약을 하는 게 관례인데 1년 계약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지요. 당연히 1년은 더 일할 거라는 생각이 ‘헛된 꿈이었구나!’라는 자책감이 들더라는 겁니다. 그래도 이젠 모든 걸 내려놓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했지요. 다만 그 후배 국장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자기 자리로 올 거면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지요.
그가 엊그제 회의석상에서 웬만한 용비어천가는 울고 갈만한 명언(?)을 남긴 풀잎 국장이라는 걸 알았지요. “혹시 풀잎이 빛나는 것 보셨나요? 풀잎이 언제 빛을 내냐면 태양이 비출 때 빛이 납니다. 저는 풀잎에 불과한데, 태양이신 지사님의 빛을 받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빛날 수 있었습니다.”라고 입을 열었다지요. 그리곤 “영화로 치면 지사님은 감독이자 주연이고 저 같은 사람은 조연입니다. 조연배우로 경기도라는 아주 좋은 영화이자 국민의 사랑을 받은 영화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줘 감사합니다. 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말한 뒤 웃으며 손가락하트를 날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태양으로 여길 정도로 존경하면 계속해 태양이 빛나도록 돕는 게 맞는 일이지요. 어째서 일 잘하고 있는 선배자리를 탐냈는지, 그것도 6개월 일찍 그만두면서까지 그래야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일한 국장을 모시고 일한 후배들이 ‘참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다른 건 몰라도 아부하는 것도 능력이라는데 아부하는 건 많이 배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도청의 국장을 아무나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도청산하 공기업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태양까지 소환한 건 넘쳐도 한참 넘친 일이지요. 저도 모르게 살짝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도청에서 30년을 일했지요. 비록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올 곧은 가치관으로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일했습니다. 퇴직 후, 가끔 후배들을 만나면 도청 국장쯤 되면 승진하려고 기웃거리지 말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할 줄 알아야 된다고 말해주었지요. 직원들이 잘하면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잘못하면 엄중히 꾸짖고 바로잡아주는 맏형 노릇을 해야 된다고 충고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이제 그런 충고는 그만두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한편으론 도청에 있을 때, 선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홍 과장! 엊그제 홍 과장이 얘기한 게 맞습디다.” 도청에서 문화정책과장으로 일할 때, ‘안 된다.’고 직언했더니 화를 냈던 지사께서 며칠 후, 저에게 건넨 말이지요. 호랑이처럼 무섭기로 소문난 L지사시절에도 ‘안 된다.’고 직언하는 간부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런 간부들을 찾아볼 수 없는 도청이 되었다는 생각이지요.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는 걸 모르고 떠들어댔으니 저도 별 수 없이 ‘꼰대’대열에 합류한 듯합니다. 그래도 가끔 올곧게 중심잡고 일하면서 ‘안 된다.’고 직언하는 후배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지요. 뜬금없이 빗속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