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늘려 대물림 하는 건, 참 어른이 아닙니다.
세상은 내 맘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고 누구도 내 맘대로 살아가는 게 어렵습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 이치이지요. 결혼하고 방2개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고향에 내려가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가 뜬금없이 한 마디 던지셨지요.
“돈은 모아놓은 게 있니?”
“조금 모자라는데 대출을 받으면 됩니다.”
“공무원 월급으로 살기도 빠듯할 텐데...”
갑자기 머리가 허여 지더니 뒷덜미가 뻐근해졌습니다. 수학적으로 생각하니 그게 만만치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도 죽어라 아끼고 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중도금을 치를 무렵, 부족한 돈을 마련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닐 때, 부모님이 거금 1천만 원을 선뜻 보태주셨지요.
그런데 정작 입주를 몇 개월 앞두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겨우 내 집을 마련했는데 예순 둘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신 것이지요. 장례를 치르고 난 후, 그 돈이 농협에서 대출을 받은 것이라는 걸 알고 울컥했습니다. 그 빚은 결과적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갚은 것이었지요.
아버지는 내가 은행 대출을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농협 대출을 받아 중도금을 보탠 것이었습니다. 박봉의 월급으로 살아가는 자식이 빚을 지고 살아야하는 게 안쓰러웠을 테지요. 여섯 자식들을 위해 논밭까지 팔아가며 공부시켰지만, 그래도 자식이 빚을 지는 건 부모 입장에서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듯합니다.
나 역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결혼을 할 때, 마음속으로는 번듯한 집을 마련해주고 싶었지만 사정이 그리 녹록치 않았지요. 아내와 상의 끝에 직장이 있는 대전에 25평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주었습니다. 결혼 3년 후, 아들이 3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았지요. 그사이 맞벌이를 해서 돈을 모았는데 조금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고 그 모자란 돈을 다시 마련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대출까지 받아가며 저를 도와 준 아버지의 심정이 이러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자식이 빚지는 것도 마음 아픈데 자식에게 빚을 물려주고 싶은 어버이가 어디 있겠는지요.
코로나19로 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자 재난지원금을 일률적으로 지급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지원금 없이도 충분히 잘 사는 사람에게까지 지원해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지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것보다는 어려운 사람에게 더 많은 금액을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겁니다. 한 번 시작된 복지제도를 끝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재난소득지원금으로 재미를 보았다고 이제는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겠다고 외치는 기본소득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복지는 취약 계층이나 어려운 사람으로 최소화하는 게 맞는 일이지요. 모두에게 일정한 금액을 주는 것은 눈감고 ‘제 닭 잡아먹고 다시 알을 부화시켜 닭으로 키워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공짜는 마약과 같아 늘어날수록 위험하다는 게 정설이지요. 옛 어른들은 돈이 생기면 쓰기보다 빚부터 갚았습니다. 나눠주는 걸 줄이고 나라 빚을 갚는 게 우선이 아니겠는지요.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자식에게 빚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악물고 살아온 처절한 부모의 삶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빚 얻어 살면 편하기는 합니다만 조금 힘들다고 나랏빚 1,000조 시대를 눈앞에 두고 나만 살겠다고 빚내는 건 염치없는 일이지요. 빚을 줄여주진 못해도 늘려서 물려주는 건 다시 생각해볼 일입니다. 정치인은 선거승리가 모든 가치보다 우선으로 생각하지요. 그러나 나라 살리고 빚 갚는 건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고, 공짜 좋다고 빚을 늘려 대물림 하는 건, 참 어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