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을 걸고 왔어야 했는데 못 걸고 와서 99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배구를 4강으로 이끈 뒤 귀국한 김연경 선수가 공항에서 열린 귀국환영식에서 “감독이 김 선수를 100점 만점에 5,000점이라고 극찬했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것이지요. “100점도 과하고 메달을 못 땄으니 99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 하고 싶은 것은 “빨리 집에 가서 씻고, 누워서 치킨을 시켜 먹을 거다. 중국 리그에 가기 전까지 한두 달 정도 몸을 다시 만들어서 리그를 준비하겠다.”며 웃었지요. 그는 또 “사실 떠나기 전만 해도 예선 통과가 가능할까 싶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기대를 안 한 건 사실이다. 우리가 원 팀으로 똘똘 뭉쳐서 이뤄낸 값진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역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고 이렇게 환영을 받은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지요. 아낌없는 헌신과 리더십으로 함께 한 김 선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여자배구대표팀은 일부 주전선수가 불미스러운 일로 선수단을 떠나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선수단의 사기도 크게 떨어진 상태였지요. 이런 가운데 주장이자 맏언니인 김연경 선수는 동료와 후배들을 다독이며 어수선한 대표 팀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경기를 하는 동안 허벅지에 실핏줄이 터지는 상황 속에서도 모두를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4강까지 진출하며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준 것이지요. 금메달보다 값진 4강이니 국민들의 박수를 받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또 하나의 감동을 김연경 팬들이 안겨주었지요. 8강전에서 패한 터키가 최악의 산불 피해로 고통 받는다 걸 알고 터키에서 활동했던 김연경 이름으로 묘목을 기부한 게, 그것입니다. 이에 터키의 비영리단체 환경단체연대협회(CEKUD)는 홈페이지에 묘목을 선물해준 김연경 팬들에게 한글과 영문으로 감사의 메시지를 올린 것이지요. 이 단체는 “한국의 친구 여러분! 수천 그루의 묘목을 아낌없이 기부함으로써 지지를 보여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맡겨주신 묘목을 오랜 우정처럼 지키고 가꾸고자 합니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김연경과 배구 팬들의 묘목 선물에 현지 환경단체가 감사 인사로 화답한 것이지요. 장외 금메달감이라는 생각입니다.
도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금 6, 은 4, 동 10개, 종합순위 16위로 1984년 LA 올림픽 이후 가장 부진한 성적을 보였지요. 우리나라는 태권도 종주국인데 한 개의 금메달도 못 걸었고 유도와 레슬링, 복싱성적도 초라합니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이 쏘아올린 희망 메시지는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안겨주었지요. 높이뛰기에서 4위에 오른 우상혁 선수는 늘 파이팅을 외치고 거수경례를 하는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메달 사냥엔 실패했지만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선전을 펼친 황선우 선수 등 지난 날, 메달을 못 따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던 세대와는 다른 긍정적인 모습이 코로나19로 지친 우리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지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우 상혁 선수에게 동메달 혜택을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SNS엔 근대5종 4위인 정 진화 선수, 한국 신기록을 갱신하고 수영 자유형 100m 5위에 오른 황선우 선수에게도 혜택을 주자는 글도 올라왔지요. “그들이 보여준 긍정적인 에너지는 코로나에 지쳐있는 국민들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경기에서 지면 경기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거나 상대선수와 인사도 하지 않고 등을 돌리던 과거와는 달리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은 메달보다 값진 일이었지요. 비록 기대만큼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모두 죽을힘(死力)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3년 후, 프랑스 올림픽에 기대를 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