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 인사안(案)인데 한번 보시겠어요?”
남경필 지사 시절, 비서실장으로 일할 때, 박수영 행정부지사가 찾아서 건너갔더니 인사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인사야 전문가인 부지사님이 최고인데 제가 무슨….”
“지사님이 제게 인사 전권을 맡기긴 하셨지만, 혹시 다른 말씀이 있었는지 해서요.”
행정부지사는 도청의 인사를 총괄하는 인사위원장입니다. 더구나 박 부지사는 인사전문가로 공인받은 공직자였지요. 얼마 후 남 지사가 내게 인사안을 봤는지 물었을 때, “박 부지사만큼 인사를 잘할 사람이 없으니 믿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작은 일화가 있었던 지사 취임 후의 첫 번째 인사는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요. 내부에서는 역시 인사 전문가다운 솜씨였다고 하고, 언론에서도 대체로 남 지사가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관선 시절, 저는 비서실에서 다섯 분의 지사를 모셨지요. 지사가 바뀌면 으레 비서실 직원은 모두 교체되는데 저만 줄곧 남게 됐습니다. 비서실 업무 특성상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하는지라 반갑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일을 잘하니까 계속 남겼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지요.
다섯 분을 모시는 동안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특히, 지사와 직원 사이의 가교 구실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급한 결재는 행사 현장이든 지사공관이든 이동하는 차량에 동승시켜서라도 받도록 해주었습니다. 부서에서 요청하는 사항은 되도록 반영해주려고 애썼는데, 그러다 보니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는 일이 많아졌지요. 더러는 반대로 지사의 생각을 전하며 직원을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인사과장으로 일할 때, 비서실에서 인사와 관련한 쪽지를 전해왔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제가 비서실에서 일할 때는 그런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사께서 인사과장이나 국장을 불러 직접 지시하는 게 관례였지요. 쪽지를 들고 들어가 지사께 보여드렸더니 ‘그런 일 없다.’고 했습니다. 비서실장이 청탁을 받은 걸 지사의 뜻처럼 내세운 것이지요.. 쪽지를 돌려주면서 한마디 던졌습니다. “실장이 지사 힘을 빌려 딴 짓을 하면 지사께 누(累)를 끼치는 일이니 처신을 똑바로 하라!” 그 후론 그런 쪽지가 날아드는 일은 사라졌지요.
비서실 근무는 민선 지사 시절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임창열 지사 때는 비서관, 남경필 지사 때는 비서실장으로 일했지요. 특히, 남 지사 때는 제가 지사보다 나이가 많고 1급 명퇴자 출신인지라 ‘왕 실장’이라고 했는데, ‘어른’이라는 의미로 붙인 별칭이었겠지만 달갑지 않았습니다. 당시 세간에서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니 ‘십상시’니 하는 말이 나돌 때여서 더더욱 그랬지요. 일개 비서관이 인사 전횡을 일삼고 국정을 농단한다 해서 나온 말인데, 얼마나 위세가 대단했으면 총리나 각부 장관이 대통령과 소통할 기회를 차단할 수 있었을까. ‘고관보다 고관 집 개 소리가 더 크다.’는 말이 있지만 너무 짖어대면 과감히 없애버려야 할 일, 제가 극도로 조심하고 가장 경계했던 지점입니다.
저는 일곱 분의 지사를 모셨지만, 측근이라는 소리를 들어본 일이 거의 없고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무릇 있는 듯 없는 듯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정의 흐름이 강물처럼 한 결 같이 흘러갈 수 있게 지사를 보조하는 게 비서의 역할이지요. 어공이 아니라 늘 공인데다 그게 맡은 업무이고 맡은 일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비서실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모시는 분에게 누(累)가 된다는 게 통설이지요. 비서가 고관행세를 하면 결코 좋을 게 없습니다. 가끔 선후배 공직자를 만나면 옛이야기를 하게 되고 비서실 얘기도 나오는데, 이럴 때면 나는 말을 하지 않지요. 자칫 기밀을 말할 수도 있고, 모셨던 지사께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