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만났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간 얼어붙었던 정국이 풀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문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집무실 이전 지역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차기 정부가 판단할 문제이고 지금 정부는 정확하게 이전 계획에 따른 예산을 면밀히 살펴 협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예산안을 다시 짜오라’고 했지요. 취임전 대통령 집무실이전이 난망해졌습니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직접브리핑을 했지요. 청와대는 개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5월 10일부터라고 못 박았지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늦어져도 청와대개방은 이뤄질 듯합니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청와대 이전 공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요. 30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광화문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한 이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 역대 대통령 후보들이 같은 공약을 되풀이 했습니다. 고 노무현대통령은 아예 세종 시로 이전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지요.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 ‘꿈꾸는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에 대해 “사람이 먼저인 나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소통해야 한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옮겨서 출퇴근하는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지요.
청와대 환경이 우리 대통령을 제왕적으로 만들고 소통이 실종돼 실패하는 대통령이 생겼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청와대 이전 공약이 줄이어 나온 이유이고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문대통령의 1호 공약인 광화문 집무실 이전은 무산됐습니다. 청와대 이전을 위한 별도의 위원회를 꾸려 집무실을 광화문 등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지만 2년 만에 결국 무산된 것이지요. 가장 큰 원인은 경호와 보안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에 고층건물이 많아 테러 등 경호에 취약한 데다 시민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지요. 또한 국가위기 관리상황실 등 안보시설을 옮길 곳과 외국 국빈을 맞이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공간을 국민에 돌려주겠다는 당선인의 생각은 단오하지요. 청와대 개방은 권위와 불통의 세월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생각인 듯합니다. 윤 당선인의 뜻대로 진행되면 머지않아 청와대와 북악산자락은 국민들이 언제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국민공원'으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이전문제를 두고 여·야 정치권 입장은 극명하게 갈리지요. 막대한 비용과 안보 공백을 초래하는 무리수라는 비판과 어느 곳보다 더 좋은 입지란 반론이 팽팽합니다. 문대통령도 “청와대는 높은 권부를 상징하는 용어가 아니라, 서울의 대표 휴식 공간을 뜻하는 용어가 된다.”고 했지요. 같은 공약에 이름만 바뀐 건데 왜 힘이 들까요?
시기의 문제일 뿐 대통령 집무실이전과 청와대 개방은 기정사실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청와대는 ‘근 현대사 기록관’이든 ‘대통령기록관’이든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겠지요. 지난날 영욕(榮辱)의 역사가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 멀지 않은 듯합니다. 그 터에 남은 발자취는 세월 속에 묻히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 국민에겐 새로운 기쁨과 울림을 주는 공간으로 사랑받겠지요. 외국인 관광객들도 꼭 한 번 찾아보고 싶은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구중궁궐로 여겨지던 권력의 공간이 국민 품으로 돌아온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요. 벌써 청와대로 나들이 가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세상오래살고 볼일이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