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은 잘해야 본전, 잘못하면 한 방에 간다.’는 말이 있지요. 의전이 잘못되면 행사의 목적이나 취지가 무색해지므로 나온 말일 겁니다. 경기도청에서 의전담당 과장으로 일할 때, 매월 열리는 조찬모임이 있었지요.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 교육감 등의 도 단위 기관장과 국회의원, 시장, 군수, 각급 단체장들이 멤버였습니다. 과장보직을 받고 첫 기우회(畿友會)날이었지요. 행사가 시작되고 사회자가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외친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릿속이 하얗고 아득해졌지요. 단상에 태극기가 보이질 않았던 것입니다.
도청 강당이 좁아 중소기업센터 다산 홀에서 개최했는데, 당연히 태극기를 갖고 가 단상에 놓아야 할 일을 서로 미루는 바람에 그 사달이 난 것이지요. 행사 시작 후, 냉수만 들이켜면서 내내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행사를 마친 후 손학규 지사께 어떠한 처벌도 받겠다고 고개를 떨궜지요. 그런데 지사께서 “총무과장 신고식 한번 제대로 했다고 생각해”라고 말을 하며 등을 두드려주며 관용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손이 오그라듭니다.
의전의 기본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서 출발하지요. 그 바탕 위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참석 인사의 문화나 가치관을 잘 이해해야 되지요. 중국 손님을 방바닥에 앉아 먹는 삼계탕 집에 모시고 갔다가 곤혹을 치른 일이 있습니다. 중국인은 바닥에 앉지 않는다는 걸 몰랐던 거지요. 준비가 철저하게 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특히, 격식이나 절차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자칫 행사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도 고려해야 되지요. 세심하고 치밀하게 품위가 있도록 준비해야 하고, 순발력과 유연함도 필요한 것이 의전입니다.
의전은 어렵습니다. 특히, 좌석 배치는 대단히 조심스럽지요. 자기 좌석을 지정해 놓지 않았거나 좌석 배치가 잘못됐다며 난동을 피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좌석 배치는 서열에 따라 정하는 게 핵심이지만, 그게 그리 쉽지는 않지요. 다양한 계층의 인사가 참석할 때는 어떻게 서열을 정해야 할지 난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라고 해도 좌석 배치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고함을 치며 퇴장해 버리는 사람도 있지요. 그럴 때마다 의전을 준비한 사람은 좌불안석 초주검이 됩니다. 이 때문에 의전을 담당하는 부서에 가는 걸, 꺼리기도 하지요. 행사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해서 성공적으로 마치게 하는 게 의전의 매력이지만, 사실 잘해도 대부분 표가 안 나는 일인지라 피하고 싶은 것 일겁니다.
의전은 때로 경쟁력을 좌우하지요. 의전으로 기관이나 단체의 수준을 가늠하기도 하고, 나아가 일의 성패가 갈라지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얼굴 예쁘면 연예인이 됐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요. 예능 감각이 있어야 하고, 인성도 좋아야 하고,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는 재능까지 갖춘 사람을 선호합니다. 격식이나 겉치레에 치우쳤던 의전도 지금은 상대의 마음과 가치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중점을 지요. 기획력이 중요하지만,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면서도 품격을 갖춰야만 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의전은 어렵습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행사 전반을 일사불란하게 이끌어가야 하는 연출가여야 하니 말이지요.
사람 사이에도 의전이 필요합니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먹은 일이 있지요. 이들이 돌아간 후 아들이 “반바지에 맨발로 온 아저씨는 안 오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안 좋아 보였던 것이지요. 초대받아 식당에 갔는데 정작 초청한 사람이 한참 늦게 나타나는 일도 있습니다. 자기가 주관하는 모임이라면 먼저 나가 손님을 맞아야지요. 초청한 사람이 안 보이면 먼저 온 사람들이 서로 어색하고 얼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의전은 공식행사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 부모와 자식 간에도 필요하지요 존중, 배려, 예의가 물 흐르듯 매끄럽게 잘 어우러져야 의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