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짙푸른 하늘아래 산들이 울긋불긋 현란한 색동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싱그러운 바람결에 지난여름 땀 흘리며 가꾼 열매들이 터질 듯 탱글탱글하지요. 여기저기에서 후두 둑 후두 둑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귀뚜리소리에 맞춰 고추잠자리 떼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지요. 눈빛 환한 한낮에도 총총 별이 내리고 낮달이 푸른빛으로 하늘자락에 걸려 있습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지요. 옷깃을 세우고 낙엽 지는 벤치에 앉아 있으면 그가 바로 시인이요,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윗저고리 깃을 세운 채 걸어가면 그가 바로 생각에 잠긴 철학자입니다. 가을은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지요. 하늘이 뚫린 듯 쏟아 붇는 장대비에 천둥 번개까지 몰아치는 여름에는 그리 깊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가을은 흔들리는 갈대처럼 살아가는 이유가 의문부호로 날아들어 몸부림치게 하지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은 끝없이 방황하고 불혹(不惑)의 세대는 꽉 차게 여문 곡식처럼 넉넉함을 만끽하는 가을이 될 것입니다. 지천명(知天命)의 세대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겠지요. 삶을 달관한 이순(耳順)을 넘긴 어르신들은 여여(如如)하게 세상을 관조하며 보름달빛 같은 마음으로 가을을 보낼 것입니다. 하늘 가운데 떠도는 구름에게 물었지요. ‘도대체 세상을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구름은 아무 말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치 산다는 것이 덧없이 흘러가는 구름 같은 거라는 듯이 그렇게 말이지요. 가을은 이렇게 고혹한 햇살과 하늘빛으로 깊어만 가는데 우리네 삶은 그리 넉넉지 못한 듯합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그 어려움 속에서도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몸부림치는 소시민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버거운 삶의 무게가 천근만근인데 ‘엎어진 놈 밟는다.’고 정치판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고 진흙탕싸움판이지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걱정을 끼치고 있으니 한심한 일입니다. 울고 싶은 마음을 넘어 죽고 싶은 사람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지요. 그러다보니 가을 들녘은 풍년이 들어 풍요로운데 우리네 마음은 빈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허허한 마음을 채워줄 희망의 싹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조상님들은 가을걷이가 끝나면 동네사람들이 너른 공터에 모여한마당 큰 잔치를 벌이고 했습니다.
돼지를 잡고 음식을 넉넉히 마련하고 풍악을 울리며 신명나게 춤을 추며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한 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며 흥겨워했지요. 풍년을 이루게 해준 하늘 님과 조상님께 감사드리고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고 자축하는 축제였습니다. 5일마다 열리는 장터에서는 씨름판도 벌어졌지요. 장사로 선발된 씨름꾼에게 주는 송아지는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서 있었습니다. 동네잔치는 달이 동산위로 얼굴을 내밀고 그 달이 술에 취해 불그레해질 때까지 늦도록 끝날 줄 모르게 이어졌지요. 오랜만에 동네사람들의 노래 소리 드높아지고 신명난 춤판이 벌어지고 눈 맞은 처녀 총각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습니다. 가을은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축복의 계절이었지요.
하지만 올해는 이러한 동네잔치를 보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계절은 분명 더없이 풍요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왔지만 우리네 마음이 그다지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을을 가을답게 보내려면 넉넉한 마음이 필요한 법이지요. 이러한 여유로운 마음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닙니다. 세상살이가 가을다워지려면 보다 많은 여유가 필요한 것이지요. 한마디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는 이웃들의 삶을 돌아보고 베풀면서 함께하는 몸짓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을이 가을답고 휘영청 밝은 달빛 가득한 광장에서 한바탕 흐드러진 동네잔치가 벌어지면 더없이 좋겠지요. 가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넉넉하지 않더라도 마음과 마음을 모으고 나누고 정이 넘치는 잔치가 벌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