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넘은 관선단체장 시절, 새해가 되면 도정책임자인 도지사는 시·군의 업무를 보고받고, 주민과 소통하는 것이 관례였지요. 도지사가 연두순시를 통해 각 시·군의 새해 설계를 파악하고, 주민과 대화를 통해 수렴한 민원을 도정에 반영하는 일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시장이나 군수도 좋은 창안이나 시책은 특별 예산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도지사의 연두순시 준비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지요. 자치시대 이전에는 정부에서 도지사를 임명하고, 도지사가 시장·군수를 포함해 사무관 이상을 임명하는 권한이 있었으니 그 영향력이 대단했지요.
경기도는 서울보다 17배나 넓고 시, 군이 많아 연두순시가 한 달 정도 걸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강화군이나 연천군은 이른 아침에 출발해야 할 정도로 먼 곳이었지요. 1989년 새해 연천군 연두순시 때가 기억납니다. 거리가 멀고 승용차로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돼 그날은 도청 운동장에서 헬기를 타고 출발했지요. 보통 연두순시 때는 도청의 국장이 돌아가며 지사를 수행하는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국장은 지사차량을 이용해 일찌감치 먼저 떠났지요. 헬기엔 임사빈지사와 임완수 도 새마을회장, 수행비서인 제가 탑승했습니다.
도청에서 이륙하고 20분 정도 지났을 때였지요. 갑자기 폭설(暴雪)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동비행 장치가 없는 헬기는 시야확보가 어려우면 조종이 사실상 불가능한 건 당연한 일이었지요. 하루 전, 수원 공군부대를 통해 기상예보를 확인했는데 눈이 온다는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난 눈이 쏟아졌지요. 헬기가 제자리에서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앞이 안 보이니 눈이 그칠 때까지 회전 운항으로 시간을 벌어보자는 게 기장(機長)의 생각이었겠지요. 답답했지만 그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리 회전 운항이 시작되자 불안하고 초조해졌지요. 짐짓 걱정안하는 듯했지만 지사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새마을회장도 불안한 표정이었습니다. 기장과 부기장도 진땀을 흘리더군요. 다행히 15분 정도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거짓말처럼 그치고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승용차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연천군청 옆 학교 운동장까지 50분이 안 걸렸지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헬기가 내릴 때 일어나는 먼지는, 눈 덕분에 걱정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여유도 생겼습니다.
서둘러 업무 보고를 끝내고 주민간담회장에 들어설 때, 큰 박수가 쏟아졌지요. 갑자기 쏟아진 눈 때문에 헬기에서 고생했다는 말을 들은 듯했습니다. 정신없이 허둥지둥 연천군 일정을 마친 후, 승용차로 다음 일정인 동두천으로 향할 때였지요.
“뭔 눈이 갑자기 그렇게 많이 와!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어. 나야 도지사까지 지냈으니 순직해도 그만이지만, 저 젊은 홍비서가 잘못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 예측 불가능한 위기상황에서도 저를 걱정했었다니, 감동이었지요.
“홍비서! 지사님 정말 좋은 분이지? 잘 모셔! ”
동두천에 도착했을 때, 경의현 식산국장이 제 손을 잡으며 말했지요. 돌아오는 길에 지사께 고맙다고 인사드렸습니다.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지요. 경기도청 비서실에서 일곱 분의 지사를 모시며 일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 많지만, 그때, 그 임지사의 말 한마디는 정수리를 뚫고 가슴 속에 선명하게 새겨졌지요. 진심이 담긴 한마디는 힘이 있고 감동을 준다는 걸 느꼈습니다. 40년 공직생활동안 그 한마디를 늘 가슴에 담고 곱씹어보며 살았지요. 그 한마디는, 지금도 묵직한 감동으로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