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짙푸른 하늘아래 산들이 울긋불긋 현란한 색동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싱그러운 바람결에 지난여름 땀 흘리며 가꾼 열매들이 터질 듯 탱글탱글하지요. 여기저기에서 후두 둑 후두 둑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귀뚜리소리에 맞춰 고추잠자리 떼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지요. 눈빛 환한 한낮에도 총총 별이 내리고 낮달이 푸른빛으로 하늘자락에 걸려 있습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지요. 옷깃을 세우고 낙엽 지는 벤치에 앉아 있으면 그가 바로 시인이요,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윗저고리 깃을 세운 채 걸어가면 그가 바로 생각에 잠긴 철학자입니다. 가을은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지요. 하늘이 뚫린 듯 쏟아 붇는 장대비에 천둥 번개까지 몰아치는 여름에는 그리 깊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가을은 흔들리는 갈대처럼..